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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Nov 20. 2018

일유가 일본어 유치원 아닌가요?

한국과 미국에서 아이를 동시에 키워보기

교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이가 처음으로 놀이학교에 다시 등원을 했던 어제, 아이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별사탕을 들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친구들한테 별사탕 선물 잘 나눠줬니?"라고 묻자, "음, 응"이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이 얼마나 선물을 받고 좋아했는지 마치 현장 중계하는 것처럼 목소리 높여 얘기해줄 아이의 답변은 뜨뜻미지근했다.


어제 저녁 담임 선생님이 보낸 문자를 받고 아이의 답변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반 친구 3명이 지난주에 영유, 즉 영어 유치원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친구들에게 주려고 가져갔던 별사탕 남은 것을 다른 반 친구들에게 주고 왔다는 것이다. 이달 초에도 영어 유치원에 간다고 반 친구 한 명이 빠지더니 지난주에도 3명이 빠져 원래 7명이던 반 정원은 반도 안 남았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수현이라는 친구도 혹시 떠났나 해서 내심 걱정하며 물었는데, 다행히 아직 남아있단다.


아이가 집에 와서도 열심히 연습하는 놀이학교의 복싱 수업


5살 아이들 반에 학생들이 한꺼번에 빠지니 무슨 일인가 싶어 오랜만에 네이버 동네 부모 카페에 들어가 봤다. 이미 그곳에선 엄청난 교육 정보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4살에서 5살로 넘어가는 시기는, 이제 영유(영어 유치원)를 보낼 것인가, 일유(일반 유치원)를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분수령 같은 중요한 때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내년 입학을 위한 지원 시기는 모두 마감이 끝났고 입학을 위해서는 대기를 해야 된다고 한다. 카페 글을 한참이나 주욱 읽어 내려간 뒤에야 일유가 일본어 유치원이 아니라 일반 유치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벌써 아이들 교육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느꼈다.


카페글을 읽다 보니 재밌으면서도 무시무시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되는데, 아무래도 내 관심을 끈 건 '리터니' 교육에 대한 것. 이것 또한 맘 카페의 새로운 용어인 것 같은데, 외국에서 어렸을 때 잠깐 살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을 칭한다. 요즘엔 워낙 그런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연들도 많이 올라오는데 미국에서 6살까지 살다온 아이가 말은 잘하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영유에 보내려 하다가 라이팅 시험에 떨어져서 입학을 하지 못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한국에서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아이들은 6,7살 정도면 꽤 심오한 질문에 대해서도 에세이를 종이 한 바닥 써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다들 영어는 기본, 7살이 넘어 한국에 들어오면 이미 초등 수학 선행 학습을 놓쳤기 때문에 아이나 부모나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걔 중에는 남편 주재원을 따라 2,3년 정도 해외에 나가야 될까요, 말까요 하는 한 엄마의 질문에 인생을 놓고 보면 좋은 경험일 수 있지만, 돌아와서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말리고 싶다는 조언의 댓글도 많이 있었다. 카페 글을 처음엔 흥미롭게 읽다가 머리가 지끈 아파져서 나와버렸다.


사실 이번에 미국 다시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갈 '5세 아이 책 전집'을 어떤 걸 사 가지고 가면 좋을지 선배 엄마한테 물어볼까 했는데,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어젯밤에 집 앞 영풍문고에 가서 우리 아이가 보면 좋아할 만한 그림책들을 둘러봤다. 모든 집마다 책장에 꽂혀있는 '국민 5세 책 시리즈'가 우리 아이에게도 꼭 맞으란 법은 없을 테니까. 


좀 전에 할머니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가는 아이에게 "오늘도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와!"라고 인사해줬다. 지금 아이가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서 연필을 잡는 대신, 흙을 밟으며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것,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 대신 엄마와 할머니한테 '케세라세라'나 '도레미송' 같은 멋진 팝송을 배워 같이 화음을 맞춰 부르는 것, 미술 학원에 가서 정해진 재료로 다 같이 똑같이 멋진 작품을 완성시키기보다는, 출장 간 아빠에게 보내겠다며 달력을 잘라 그림을 그리고 자기의 소중한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서 카드를 만드는 것, 난 이런 시간들이 우리 아이를 진짜 키워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계속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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