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유학생 와이프의 이야기
지난 가을부터 시카고로 공부를 하러 떠난 남편 덕분에 나에겐 시카고에 간헐적 우리 집이 생겼다. 아직 윤서가 너무 어린 탓에 혼자 거기까지 가서 아기 키울 자신도 없고, 또 내 일을 쉽게 그만두고 싶지 않아 우리 부부는 당분간 떨어져 지내는 것을 택했다. 난 그 유명한 기러기 부인이다. 대신 내가 구정이나 추석같이 긴 연휴에는 내가 시카고를 간다. 또 남편이 방학이나 가족의 특별한 날에는 서울로 와서 최대한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 갓난쟁이를 키우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우리 가족의 생활과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 우리는 이 시간도 언젠가 애틋한 추억이 되려니 하며 즐기고 있다.
남편은 지난 가을 학기부터 MBA를 시작했다. 다른 전공에 비해 네트워킹이 중요한 분야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MBA 학생들은 시카고 다운타운인 Loop 인근의 아파트에 모여 산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시세가 좀 비싸긴 하지만, 살기는 참 좋다. 미국의 좋은 아파트들은 다 그렇다지만, 어쨌든 아파트 안에 야외 수영장과 야경이 끝내주는 자쿠지, 웬만한 피트니스 클럽보다 더 좋은 운동시설과 라운지가 있어서 (그 좋은 시설들을 눈으로만 이용하는) 남편 혼자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역할인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와 아름다운 미시간 호수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이라 위치가 상당히 좋고, 걸어서 10분 안의 미시간 스트리트는 서울의 청담동 같은 쇼핑 거리이다. 또 집에서 나와 밀레니엄 파크를 가로질러 산책하면 그 끝에 시카고 미술관이 있는데, 여기는 미국의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나에게 시카고는 설레는 여행지 같은 도시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내 손으로 꾸민 집이 있기에 어느 도시보다 더 정이 가는 곳이다. 자꾸만 가게 될 도시이기 때문에 여느 여행지에서처럼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뭐 하나 놓칠세라 구경하기 보다는, 쉬엄쉬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사람 구경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더 좋다. 돌아오는 구정에도 시카고행 비행기 티켓을 사놨다. 며칠 전에 서울을 다녀간 남편이 벌써 보고 싶기도 하고, 또 각오 제대로 해야 된다는 시카고의 차디찬 겨울을 경험하게 될 생각에 겨울방학 기다리던 국민학교 시절처럼 설렌다.
보니까 MBA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에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직장 경력을 몇 년 갖고 지원을 하기 때문에 나이대가 마냥 솔로일 수는 없는 시기이다. 보통은 신혼이거나, 갓 태어난 아기가 있거나, 아니면 결혼할 약혼자가 있거나, 아니면 집에서 유학 언제 갔다와서 언제 결혼할래 눈치보는 중이거나. 또 요즘은 대부분의 와이프들이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을 관두고 따라가야 되나, 아니면 각자 떨어져서 살면서 좀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나 하는 그런 고민들이 있다. (아, 물론 공부하는 와이프를 따라온 남편의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편들이 MBA를 하러 많이 온다.) 그 수 많은 고민들 만큼이나 실제로 수 많은 고민의 답들이 있다. 와이프가 한국 생활을 다 정리하고 아예 들어온 경우, 나처럼 부부가 따로 떨어져 사는 경우, 아니면 부부가 같이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는 경우. 뭐가 딱 맞다 정답은 없는 문제이다.
난 보기보다 내 인생에 대해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성껏 내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출세욕과는 다른 이야기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도대체 그냥 쉽게 살면 되지,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고민하며 사냐고 한다. 아닌 것처럼 보여도 난 은근 잘 살기 위해서 발 동동 구르면서 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도 남편이 MBA를 가기까지 말도 못하게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지금 한 선택이 최선의 선택임을 바라면서 기러기 부인의 길을 택했을 뿐이다.
앞으로 MBA 와이프의 라이프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느 날은 남편의 자랑스러운 기러기 부인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남편 보고 싶다고 징징대는 애처로운 기러기 부인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의 고민의 흔적들, 앞으로 넘어야 될 수 많은 산과 장벽들, 그리고 하나씩 이뤄나갈 크고 작은 성취와 거기서 발견하는 행복들. 나중에 우리가 더 어른이 되어버리기 전에 우리가 열심히 살았던 이 날들을 잘 기억해두기 위해서 잘 적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