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알리니아 레스토랑 그룹의 Book-by-ticket 사업 모델
몇 년 만에 MBA를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남편은 그 생활이 꽤 재미있나 봅니다. 특히나 이제는 2학년이어서 작년처럼 취업을 위해 발을 동동 굴러도 되지 않으니 더욱 그러겠지요. 이번 학기에는 평소에 듣고 싶었던 수업도 맘 편히 듣고, 수업 외에도 시간을 많이 써야 되는 프로젝트 수업에도 참여를 합니다. 2학년이 되면 학교 가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본인이 육아를 책임지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어버렸지만, 집에서 꽤 많은 시간을 숙제와 프로젝트 준비를 하는 덕분에 전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마치 그 학교 학생처럼 어깨너머로 주워듣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전직 컨설턴트인 남편은 직업병의 잔재가 남아서인지,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TV에서 재밌는 뉴스를 볼 때, 그 안에 들어있는 경영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제 관심 밖의 이야기라 한 귀로 흘려듣지만, 어떤 건 나중에 제가 다시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될 때 참고해 볼만한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저는 시카고에 온 이후로 남편과 처음으로 단 둘이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구정 연휴를 맞아 놀러 온 제 동생이 윤서를 봐주기로 한 덕분이죠. 이게 몇 달 만의 데이트인지! 남편도 신이 났는지 일찍부터 갈 시카고의 맛집들을 검색해 드디어 한 군데 골랐습니다. 바로 알리니아 그룹에서 새롭게 선보인 로이스터(Roister). 시카고에서 손꼽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을 보유한 알리니아(Alinea) 그룹의 명성 덕분에 시카고의 미식가들과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로이스터는 오픈한 첫 해에 미슐랭 1 스타를 받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로이스터를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약을 받는 전화를 없앤 것이지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예약 전화를 안 받는다니, 도대체 그건 무슨 소리일까요?
알리니아 그룹의 Book-by-ticket 사업 모델
알리니아는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당시 예약 전화를 응대하기 위해 3명의 직원을 상시 고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약 문의 고객의 70%는 주말 피크 타임 예약을 희망했었고 이에 고객들은 예약이 불가하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았지요. 또한 약 8%에 달하는 no-show 및 short sit (예약 인원보다 적은 수의 고객이 실제 방문) 고객들은 알리니아의 수익성을 저하시키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리니아의 창업자들은 2011년 넥스트(Next)라는 파일럿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이곳에서 현재 알리니아가 도입하고 있는 ‘book-by-ticket’ 사업모델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Book-by-ticket이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메뉴를 경험할 수 있는 티켓을 사전 판매하는 사업모델입니다. 즉, 식사를 다 마친 이후에 계산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티켓을 살 때 모든 비용을 지불했으니까요. 심지어 팁도 포함되어 말이죠. 티켓을 사전 판매함으로써 예약 손님들의 no-show와 short sit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레스토랑의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었습니다.
특히 운영비용 절감 효과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건 남편의 Chicago Booth MBA 오퍼레이션 수업에서 성공 케이스로 언급될 정도로 그 효과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티켓을 인터넷으로만 판매하고 있어 전화 응대를 하던 직원의 필요성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손님 수를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서빙 인력은 물론 식재료 수급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특히 식재료의 신선도가 중요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선 사용하지 못한 재료를 폐기 처분해야 되는 비용이 상당했었는데, book-by-ticket 모델은 이를 최소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알리니아는 매출 증대를 위해 동일한 메뉴의 티켓 가격을 시간대와 고객 수에 맞춰 차등시키고 있습니다. 영화관처럼, 인기있는 주말 저녁 시간대에는 평일 저녁보다 높은 가격의 티켓을 판매하지요. 또 조조할인처럼 이른 저녁 시간에 입장을 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동일한 메뉴, 동일한 시간대에도 6명 티켓을 4명 티켓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시카고 대학 MBA 프로그램의 Don Einstein 오퍼레이션 교수는 '사이클 타임'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4명 테이블이 식사를 마치기까지 소비하는 시간보다 6명 테이블이 소비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합니다. 대화가 길고 그룹 내 한명만 커피나 디저트를 주문해도 다른 손님들 또한 같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식사를 끝내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는 것이지요.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많은 티켓을 판매해야 되는 알리니아 그룹은 사이클 타임이 짧은 테이블을 보다 낮은 가격에 책정했습니다.
티켓 판매 대행 사업으로의 확장
알리니아 그룹은 '넥스트'에서의 book-by-ticket 테스팅을 통해 이 시스템의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운영하고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알리니아와 로이스터로 그 사업모델을 확장시켰지요. 미슐랭 레스토랑으로서는 꽤 과감한 도전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처음엔 이 독특하고 새로운 예약 시스템에 적응해야 됐지만, 이내 알리니아 그룹의 대표적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 그룹의 새로운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경쟁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티켓 판매를 대행하는 Tock이라는 플랫폼 사업을 신설한 것입니다. 오픈테이블 등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레스토랑 예약 사업에서, 일반 소비자가 아닌 레스토랑 사업자 관점의 니즈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최고급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시카고의 많은 미식가들은 파인 다이닝 예약을 위해 Tock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미슐랭' 덕분에 파인 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최현석 셰프가 지적한 대로 '노쇼' 문제는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최대 고민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건 어느 한 식당과의 약속을 어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문화가 되는데 큰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비단 레스토랑뿐만이 아니라, 미용실, 병원, 고속버스 등도 같은 문제와 고민을 안고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고민거리에 대한 해답을 이 똑똑한 시카고의 미슐랭 레스토랑 알리니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알리니아: 알리니아 그룹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입니다. 시카고 안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으로 특히 마지막 디저트를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 나와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저도 아직 못가본 곳이라 특별한 날 가려고 아껴두고 있는 곳입니다.
로이스터: 알리니아 그룹에서 가장 캐쥬얼한 분위기와 맛의 식당입니다. 새로 오픈하자마자 미슐랭 1스타를 받은 곳이지요. 철마다 메뉴를 바꾸고 있는데, 최근에 제가 갔을 때는 아시아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코스 메뉴를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된장 소스, 태국의 크랩 요리, 그리고 한국의 뚝배기 그릇 등,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아주 적절하게 이끌어내었지요. 바에 앉아 직접 셰프가 앞에서 만들어주는 요리를 보고 즐길 수 있다는게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