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토리니 여행 2017.3
3월 초, 저희 가족은 시카고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왜 하필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냐고요? 그건 바로 3월 생인 윤서가 마지막으로 유아 요금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죠. 만 2살 미만은 성인 요금의 10프로만 내면 되거든요. 너무나 단순한 이유로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저희는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생각해냈습니다. 사실 저는 아프리카를 가보고 싶었는데, 2살 아이를 데리고 아프리카는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시카고에서 산토리니를 가는 길은 멀고도 멉니다. 우선은 시카고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9시간 비행을 하고, 그 후에 그리스 아테네까지 5시간 비행을 한 후, 마지막으로 1시간 비행기를 타고 산토리니 섬에 들어가게 되지요. 아직 우유를 먹는 아이를 데리고 그렇게 오래 비행을 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지금까지는 인천-시카고 간을 자주 왕복했지만, 그래도 그건 13시간 정도면 충분했거든요. 그렇게 길고도 긴 비행을 거쳐 렌터카를 빌린 후 저희 가족은 산토리니의 숙소인 이아 마을의 작은 부띠끄 호텔인 알렉산더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예약한 알렉산더 호텔은 파란색 지붕으로 유명한 이아마을의 초입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습니다. 3월은 아직 비수기이기 때문에 관광지인 이아마을의 꽤 많은 호텔과 식당들은 문을 닫거나 아니면 새 봄에 맞이할 손님을 위한 새단장을 하는데 바쁩니다. 그래서 예약을 할 수 있는 호텔의 옵션이 많이 없지요. 잘 알려진 브랜드 호텔이 아니라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해서 아무 기대도 하고 가질 않았지요. 그런데 이 호텔에 도착한 순간,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정말 제가 지금까지 지내본 수많은 호텔들 중에서도 정말 끝내주는 첫인상을 보여주었거든요. 작은 호텔 입구 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펼쳐지는 깜깜한 밤하늘과 멋진 조명을 밝힌 이아마을의 전경! 그리고 저 멀리 파란 지붕의 집이 '아, 우리가 시카고에서 괜히 고생해서 날아온 게 아니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요.
방이 10개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이 작은 호텔은 한 그리스 주인아주머니가 혼자 운영을 하고 계셨어요. 정확히 영화 '맘마미아'의 주인공 Donna를 닮은 분이셨죠. Donna도 그리스에서 혼자 호텔을 운영을 하고 있었잖아요? 아마 성수기에는 좀 더 많은 직원이 있겠지만, 저희가 머물었던 며칠 동안 전 이 주인아주머니 한 분과 그 외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만 만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가 얼마나 일인다역으로 깔끔하고 바쁘게 일을 하시는지 벨보이, 프런트 데스크, 컨시어지, 모닝 셰프, 24h 룸서비스까지 정말 어느 역할 하나 부족한 부분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아 마을(Oia)은 산토리니 섬 중에서도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마을입니다. 지중해 바다를 품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산토리니 전통 건축 양식에 따라 절벽에 하얀 동굴 같은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지요. 깜깜하고 투명한 밤하늘에 별들이 보이고 따뜻한 조명을 품은 하얀 집들은 편안하게 조용한 이 풍경이 정말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또 처음 보는 이국적인 그런 풍경이었지요. 이 동네에 있는 모든 호텔들은 다 전통적인 하얀 동굴 스타일의 집입니다. 저희가 며칠 동안 묵을 방은 호텔 입구에서 몇 계단을 내려오면 작은 테라스가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세 집 중의 하나였습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산토리니에 사는 사람이 살 법한 집을 닮은 곳이었죠. 마치 산토리니에 저희가 오래 지내온 집이 생긴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첫날 밤늦게 10시가 넘어 산토리니 호텔에 도착한 저희 가족은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아 모두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혹시나 문을 연 식당이 없을까 해서 고민을 했는데, 이아 마을 최고의 컨시어지로 변신한 주인아주머니는 그 시간에 갈 수 있는 맛있는 식당 몇 개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저희는 그중에서도 전통 그리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갔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 인생 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시원한 화이트 와인에 취해 길고 길었던 비행 여정도 잊을 수 있었지요. 혹시라도 그리스에 간다면 배고픔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는 꽤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기 시작해서 아주 늦게까지, 가끔은 새벽까지 식사를 할 수 있거든요. 그냥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 진짜 요리사의 제대로 된 지중해 음식을 말이지요!
윤서에게는 하루하루의 대부분의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이겠지만, 그중에서도 엄마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 독특한 동굴 호텔은 아기의 마음에도 쏙 들었나 봅니다. 방에 있다가도 '밖에 하늘에 별 보러 나갈까?'라고 하면 '응!'그러면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하얗고 동그란 방 벽이 신기한지 손으로도 만져보고, 발로도 만져보고 그랬지요. 산토리니에 도착한 지 몇 시간만에 이 마을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렇게 머나먼 그리스로의 여행, 첫 날밤이 깊어갔습니다.
산토리니 알렉산더 부띠끄 호텔 (Alexander's Boutique Hotel)
http://www.alexandershotel.com/
이아 마을 입구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담한 부띠끄 호텔입니다. 아마도 개인이 운영을 하고 있는 곳 같아요. 아주 작은 호텔이라 따로 식당이나 부대시설이 있지는 않지만, 이아 마을에 있는 동안에는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당들이 근처에 많이 있고, 또 이아 마을의 골목과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따로 피트니스 클럽을 가서 운동을 안 해도 되거든요. 아침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식빵과 삶은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의 간단한 아침 식사를 주시는데,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이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주 일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