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 : 나이아가라 아이스와인 페스티벌
만약 제게 지구본 하나를 주고,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순위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곳 중의 하나는 바로 캐나다 나이아가라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세인트 캐서린(St.Catharines)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그곳을 왜 찍었는지는, 제 대학생 시절인 2002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당시 동생은 세인트 캐서린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홀로 타지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안됐는지 엄마는 자매는 항상 붙어 있어야 된다며 매년 여름, 겨울 방학이면 저를 무조건 동생에게로 보내셨죠. 한창 신나게 친구들과 놀아야 될 때 겨울엔 눈 쌓인 허허벌판뿐이고, 여름엔 차 없으면 딱히 할 것 없는 그곳에 틀어박혀 꽤나 지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때, 제 인생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난 졸업 후 무슨 일을 해야 되지, 그냥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해답 없는 고민들 말이지요. 학교를 잘 안 나갔던 저에게 아마도 그 캐나다 나이아가라 근교는 제 20대에 가장 의미 있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15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을 기회가 생겼어요. 바로 이 곳 시카고에서 가까이 지내는 한 가족과 나이아가라까지 로드트립을 하기로 한 것이지요. 요즘 그곳은 아이스와인 페스티벌이 한창이거든요. 시카고에서 나이아가라까지는 11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저희는 가는 길에 미시간에서 1박을 하고 세인트 캐서린을 지나 나이아가라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나이아가라 지역에 갔던 주말은 전역에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어요. 호텔에서 아침 일찍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나갔는데 폭포 소리만 들릴 뿐 물방울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떠난 나이아가라 와이너리 투어. 나이아가라 근처에는 크고 작은 와이너리 수 십 개가 마을을 이루며 모여있었습니다. 수확이 끝나 앙상한 가지만 남은 포도밭에도 역시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지요.
저희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Château des Charmes라는 와이너리였습니다. 샤또란 말이 들어있어서 왠지 규모나 시설 면에서 다른 곳보다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들어갔지요. 이름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저희가 이 날 둘러본 몇 군데 와이너리 중에서 제법 깔끔하고 방문객 안내도 잘 되어있었습니다. 따로 입장권을 구입하면 와인 양조장 투어도 가능하다고 하여 저희는 좀 더 자세하게 이 곳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 지역의 와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아이스와인인데요, 대표적인 디저트 와인입니다. 겨울철 새벽 와이너리 포도에 서리가 껴서 영하 8도 이하로 떨어지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수확을 해서 바로 즙을 내 만드는 것이 아이스와인입니다. 수분을 그대로 포도가 머금고 있어 당분과 산도가 농축돼 다른 일반 와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달콤함을 갖게 됩니다. 제한된 시간에만 특수한 제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격도 높은 편이지요. 원래 유래는 독일에서 시작한 와인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캐나다는 비달 품종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와인 제조 시설 투어는 약 한 시간 정도 진행이 됩니다. 보통 와이너리 투어를 가면 실제 포도밭을 걸으며 하는 투어와 와인을 만드는 공장을 투어 하는 것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이 되는데, 이 곳에서는 공장 투어 한 가지 프로그램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재작년에 다녀온 투스카니 와이너리의 감동이 아직 남아서일 까요. 사실 그곳에 비하면 캐나다 와이너리는 소박한 규모, 다소 투박한 제조 시설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이것 자체로도 캐나다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와인 제조 시설 투어를 마치고 1층으로 올라오면 저렇게 와인 시음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또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전시해놓고 있어서 원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구입할 수도 있고요. 저희가 방문했던 이 시기는 나이아가라 와인 페스티벌 기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북적였습니다. 와인 투어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주기 때문에 저희도 와인 두 병을 사서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들른 곳은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스와인 브랜드 이니스킬린(Inniskillin)입니다. 예전에 동생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아빠 드린다고 한 병씩 사 와서 익숙한 브랜드입니다. 또 대한항공 기내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도 가장 친숙한 아이스와인이기도 하지요. 이 곳은 유명세를 타는 곳인 만큼 와인 페스티벌 축제 리스트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만, 야외 휴식시설과 바비큐 등 간단한 먹거리도 잘 되어있고 매장도 잘 꾸며져 있어서 가장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었습니다. 만약 나이아가라 와인 투어에서 꼭 가야 할 곳 단 한 곳만을 찍는다면 바로 이 곳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와인을 찾아 떠난 여행, 개인적으로는 15년 전의 제 모습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던 여행. 예전 그 당시엔 제가 15년 후, 이러이러한 직업을 거쳐, 이런 남편과 이런 딸을 데리고 다시 이 곳을 찾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하였던, 짙은 안개만 자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치 이 곳 나이아가라의 안개처럼 말이지요. 와인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처음보다는 안개가 조금 걷혀 있었습니다. 다음번 또 제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그때는 이 날보다 안개가 좀 더 걷혀 있으려나요? 나이아가라에도, 그리고 또 제 인생에도 말입니다.
나이아가라 아이스와인 축제
캐나다 온태리오 주에는 아이스와인이 만들어지는 겨울이 되면 축제가 열리는데요,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 지역에서 한 번, 세인트 캐서린 지역에서 한 번 열리게 됩니다. 이 지역의 와이너리는 이태리나 프랑스처럼 엄청난 규모의 와이너리는 아니지만, 각자 저만의 방법으로 와이너리를 가꾸고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 디스커버리 패스($40)를 구입하면 이 지역의 수 십 개 와이너리 중 8군데를 방문해 와인을 맛볼 수 있습니다.
http://www.niagarawinefestiv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