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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27. 2017

드디어 백수 가족생활이 끝났다

남편의 졸업식

오늘 아침에 제가 남편에게 "우리 집 청소기 룸바가 며칠 동안 일을 너무 쉰 것 같아.(해석: 기계를 빨리 고쳐놔라)"라고 얘기했더니, "네 브런치도 너무 오래 쉰 것 같아. (해석: 블로그 업데이트 좀 하지?)"라고 응답했습니다. 남편은 제 블로그의 애독자거든요. 소중한 독자 한 명 놓칠 수 없어,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지난 그리스 여행 이후 업데이트가 하나도 안되어있네요.

 

그동안 좀 많이 바빴습니다. 남편이 지난주에 드디어 졸업을 했거든요.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그다음 주부터 취업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졸업 전 온 가족이 백수 상태인 그 상황이 갑자기 소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미국 내에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남편이 회사를 들어가면 남편도 신입사원이 되지만, 저도 이제 오롯이 혼자 가정과 육아를 전담해야 되는 신입 전업주부가 됩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집에서 함께 했던 6개월을 수습 기간으로 볼 수 있겠네요.

 

남편이 다니던 시카고 부스 MBA 졸업식은 지난 6월 10일에 있었습니다. 졸업식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한국의 가족들이 하루 전 날 시카고에 모두 모였습니다. 조용하던 저희 집이 오랜만에 북적이고,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 윤서는 신이 났지요. 이 날은 시카고 대학 전체의 졸업식 날이기도 했습니다. 부스 MBA 졸업식은 한국의 코엑스 격인 맥코믹센터(McCormick Center)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학교 캠퍼스 구경을 못하신 부모님들을 위해 아침 일찍 시카고 대학으로 출발했지요.



저희가 도착했을 즈음에는 한창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교수님들이 입장하시고 학생들이 그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박사 졸업생들은 특별히 더 멋진 가운을 입고 있었지요. 날은 화창하고 그리 덥지도,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은 딱 좋은 6월의 졸업식이었습니다. 길고 긴 야외 졸업식을 지루해할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액티비티 책과 크래용 등을 나눠줬습니다. 그 책 안에는 아이들이 오늘 이 곳에 왜 왔는지에 대한 이해와, 시카고 대학의 명물들에 대한 그림 소개와 어린이 졸업장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있었지요. 아이도 즐겁고, 부모도 반가운 선물이었지요.



MBA 졸업식은 늦은 오후에 따로 열렸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날은 함께 동행해야 되는 가족들도 많고, 아이도 깨끗한 외출복으로 준비시켜야 되는데 아침 일찍 움직이는 건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맥코믹 센터는 저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이 날은 주차가 힘들 것 같아 대형 SUV 우버를 불러온 가족이 타고 갔지요. 저희는 먼저 도착한 우리의 이웃사촌, 아인이네, 지석이네를 찾아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착석을 하면 졸업생들은 뒤에서 행진곡과 함께 입장을 하게 됩니다. 이 날은 PhD 졸업생까지 거의 600명 이상의 졸업생이 입장을 했는데, 아이들이 다들 자기 아빠 찾느라고 자리에 일어서서 고개를 빼고 기다렸습니다. 똑같은 졸업 가운과 석사모를 쓴 600명의 사람들 중에서도 신통하게도 다들 월리를 찾아라, 아니 아빠를 찾았습니다.



미국 졸업식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한 사람씩 나가서 호명을 하면 학장님께 졸업장을 받고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보는 입장에서는 좀 지루할 수는 있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어쨌든 정든 학교를 떠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 졸업할 때는 (요즘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졸업생이 졸업식장에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었거든요. 아, 물론 공부 잘해서 상 받는 특별한 학생들을 제외하고 말이지요.



윤서가 아빠에게 뽀뽀와 함께 꽃다발을 전달하며 졸업식은 모두 끝났습니다. 드디어 2년 간의 긴 여정이, 남편에게는 '2년 간의 인생 방학'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2015년 어느 날 밤, 3개월 된 윤서의 새벽 수유를 하면서 MBA 합격 통지서를 받고 미국에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비몽사몽으로 "그럼 우선 혼자 다녀와. 거기서 취업을 하게 되면 내가 한국 생활 다 접고 뒤따라 가는 거고, 아니면 그냥 돌아오는 거고. 내일 고민은 내일모레."라고 시작했던 우리의 대화는, 결국 남편이 여기 시카고에 남아 취업을 하게 되는 바람에 저는 한국에서 직장을 떠나 미국에서의 주부 생활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지요. 이게 모두 그 비몽사몽 했던 제정신 때문에 일어난 나비 효과입니다.



하지만, 그 비몽사몽 했던 우리의 대화 덕분에 남편은 MBA를 와서 서로 사랑해 마지않는 7명의 동남아 브로맨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원하던 직장에도 들어갔고, 또 이래저래 전 손해가 가장 많은 것 같으면서도, 또 가장 중요한 엄마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윤서는 아직 여기가 어딘지, 뭐가 뭔지 모를 나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보다는 좀 더 엄마, 아빠랑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겠지요.



이제 다들 각자가 찾은 새로운 길을 걸어갈 모든 Class of 2017 졸업생들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제 전업 주부 생활에도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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