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불짜리 교훈, 엄마 맘대로 학원 등록 안 하기

어린이 축구 교실 실패기

by Silvermouse

아침 9시에 갔다가 오후 4,5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는 동네 친구가 거의 없다. 이상하게 동네에 한국 아이들은 많은데 아이와 동갑인 아이를 찾기가 힘들고, 외국 아이들과 놀자니 아직 우리 아이가 영어가 잘 안되기 때문에 어울리질 못한다. 이 서너 살 아이들 사이에도 웃기게도 나이 차가 있어 (어쩌면 어린 나이라 몇 달 차이가 어른들의 5년 정도의 차이 수준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자기 나이보다 한 두 살 어리거나 아니면 한두 살 많으면 껴주지도 않는다. 그나마 엄마가 부지런해서 이 엄마, 저 엄마들이랑 잘 어울리며 미리미리 서로 연락해서 플레이 데이트라는 것도 잡으면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이 생기지만, 난 그럴 깜냥도 안될뿐더러 사실 하루 종일 데이케어에 가있는 한국 아이는 우리 집 아이가 거의 유일하므로 플레이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네 살 아이가 데이케어 다니느라 놀 시간, 놀 친구가 없다고? 그게 말이 되냐.' 물론 나도 생각해봤다. 현재 생활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데이케어 비용도 아낄 겸 동네 파크 디스트릭트 문화 센터에 보내볼까도 해봤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부터 목요일 밤까지 (심지어 금요일은 일하느라 있으나 없으나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실제로 남편이 일주일 중 육아에 참여하는 일수는 1 1/2일이다.) 주중에 계속 집을 비우는 직업을 둔 남편을 두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 이 동네에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한국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훨씬 요리를 잘하고(정말 요리사들처럼!), 시간 선택이 자유로운 프리랜서 직업을 갖고 있고, 아이가 학교에서 아플 때나 일이 있을 때 일 제쳐두고 언제든지 아이 학교에 데리러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이 육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모든 걸 다 혼자 책임져야 되고 엄마는 아파서도 안 되는 나로서는 지속 가능한 안정적인 육아를 위해 비록 내 삶의 경제적 윤택함을 포기할지라도, 데이케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아무튼 이번에 한국을 다녀오니 만 네 살이 넘은 아이는 내가 보기에도 친구가 필요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랑 놀겠지만, 아무래도 밖에서 뛰어놀며 자기들끼리 놀이의 법칙을 정하고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우리 집 앞 공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오후 4시에 어린이 축구 교실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저거를 등록하면 동네 또래 애들과 만나서 시간도 때우고 놀 수 있겠지!' 그렇다. 난 진심으로 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쳐야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적당히 시간을 함께 때울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맘대로 축구 교실에 등록해버렸다. 그리고 봄학기 수업료가 150불, 그 정도면 뭘 딱히 배우지 않더라도 한 시간 반 동안 내 아이를 돌봐주는 가격으로 아깝지 않았다.


고맙게도 나이 비슷한 한국 여자 아이들 몇 명이 수업에 등록을 했다. 축구 교실은 총 7~8명 아이들이 있었는데 여자 아이 세 명을 빼고는 다들 두세 살 정도 나이 많은 외국 남자아이 들었다. 원래 이 교실에 등록할 수 있는 나이가 5,6세라 한 살 어린 우리 아이가 따라 할 수 있을까 살짝 염려는 했지만, 뭐 어차피 시간 때우기 용으로 등록한 거니 괜찮겠지라는 심정으로 첫 수업을 갔다. 결과는 대참패. 전혀 괜찮지 않았다. 새로운 유니폼과 처음 만나는 축구 선생님, 수업으로 들뜬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우리 딸은 어째 처음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영어로 무섭게 소리를 질러대는 코치님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몇 번이나 혼자 반대 방향으로 공을 차기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아이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갔다.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엄마 있는 쪽으로 오지도 못하고, 그냥 엄마 쪽을 바라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한테 와봐야 내가 품어주지 않을 것을 우리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참을 울길래 더 서있게 하면 수업에 방해되겠다 싶어서 그럼 다음 시간부터 제대로 하자고 약속을 받고 첫 수업을 절반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첫 수업만 실패한 건 아니었다.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아이는 점점 축구 교실을 싫어했고, 결국은 축구 교실 트라우마가 생겼다. 축구 용품을 챙기는 아침이면 아이는 다리가 아파서 오늘 축구를 못하겠다고 하거나, 데이케어에 픽업을 가면 오늘 유치원에서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축구를 못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엄마 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아. 이 수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게 아니라, 엄마가 원해서 등록한 거기 때문에 난 축구 수업이 가기 싫어." 네 살 아이 머리에서 어쩜 이런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로 끊임없는 핑계를 만들어댔다. 그 노력이 너무 가상해서 도저히 축구를 계속하라고 할 수 없었다.



근데 웃긴 건 사실 아이는 운동 실력이 좋은 편이다. (난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체력장이 만년 5급인 아이였기 때문에 운동 신경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전문가적 시점에서 봤을 때 우리 아이는 운동 신경이 전혀 없는 인간이 아니란 뜻이다) 달리기도 빠르고, 공을 차며 앞으로 뛰어가는 드리블도 웬만한 또래들보다 잘하고, 승부욕도 있다. 아, 그 승부욕이 문제였던 거다. 내가 몇 번의 축구 교실 실패를 통해 깨달은 우리 아이 성격은, 어떤 분야이건 자기가 누구보다 잘해야 재미있게 신나서 한다. 이미 작년부터 축구 교실을 다녀서 실력이 월등히 차이나는 두 살 많은 오빠들 틈에서, 영어도 안돼서 선생님 말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그 상황이 아이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는 승부욕은 있지만, 이미 내가 1등이다,라고 정해진 리그 안에서만 뛰는 걸 좋아하는 거지, 진짜 어떤 도전이든 다 해볼 거야, 이런 건 없는 거다. 결국 집에서 미리 예습을 해서 나가든가, 아니면 자기 나이랑 비슷하거나 살짝 어린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멋지게 에이스가 되는 걸 선호하는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도 아이에게 졌다. 뭐 큰 기대를 안고 시작한 축구 수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시간 반 동안 내가 같이 뛰어놀아줄 수 없으니 선생님과 또래 친구들과 뛰어 놀라고 등록했던 축구 교실을 스케줄에서 빼버리기로 했다. 그제야 수업료가 아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150불이면 저녁 하기 싫은 날 집 앞 중국집에 나가 외식을 몇 번 할 수도 있고, 새 청바지를 살 수도 있고, 마사지를 한 번 받으러 갈 수도 있으니.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로 축구반 등록 선생님께 아이가 수업에 따라갈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내년에 쓸 수 있는 크레디트를 받거나, 혹은 부분 환불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흔쾌히 회사와 이야기해서 어떻게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수업이 절반이 진행이 되었으므로 150불의 절반, 75불을 다음 주 중으로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역시 교환과 환불에 관대한 미국. 사실 기대도 안 했는데 절반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에 이렇게 난 75불을 내고 금쪽같은 교훈을 얻었다. 절대로 내 욕심에 아이 교육에 돈과 시간을 쓰지 말 것. 아이가 진짜 원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뭐든 시작할 것. 그리고 우리 아이의 승부욕은 일반적인 게 아니라 (본인이 1등일 것으로 예상되는) 특수 상황에서만 발현되기 때문에 이 성향을 잘 파악하고 공부든, 악기든, 스포츠 종목이든 선택할 것. 이런 걸 모르고 불쑥 신청한 축구 교실 때문에 아이는 축구란 단어만 들으면 몸서리치는 괜한 트라우마를 얻었다. 뭐, 그래도 애초에 축구 선수시킬 생각은 없었으니 그 첫 실패 종목이 축구라서 다행이기는 하다.


오늘은 미국 와서 처음으로 발레 수업에 간다. 두 달 동안 데이케어를 안 보내는 대신,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며 발레, 미술, 동물원 캠프 등 아이에게 좀 더 재밌는 여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한 선택이다. 9시에 가서 점심 먹기 전에 끝나는 아이와 또 하루를 매일매일 어떻게 보내야 될지 상상이 안 가지만, 어쨌든 도전! 부디 발레 수업 가서는 아이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자신감 있게 뛰어놀다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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