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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Feb 17. 2020

MBA 왜 지원하셨나요?

Chicago Booth 지원자에서 면접관으로

내가 졸업한 시카고 대학 MBA는 캠퍼스에서 입학사정관이 면접을 보기도 하지만, 시카고 방문이 어려운 해외 거주자 등을 위해 졸업생과의 alumni interview (졸업생 면접)을 병행하고 있다. MBA 지원 당시 졸업생과 면접을 했던 나로선 당연히 pay it forward (누군가의 호의를 받고 나면 호의를 베풀어준 그 사람에게 되갚는 (pay back)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것을 갚는다는 뜻) 하기 위해 입학처 자원봉사자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카고에 쭉 거주해온 나에게 학교 입학처에서 졸업생 면접을 요청할 필요는 없었다. 최소한 지난달까지는. 


2020년 잠시 아시아에 가족과 함께 나와있는데, 이 사실을 학교 입학처에 알리자 곧바로 연락이 왔다. "You have been matched with an applicant! (지원자와 매칭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졸업생이 적어서인지 아시아에 짧게 있는 기간 동안 한국 거주 MBA 지원자 3명의 면접을 요청한 것이다.

"You have been matched with an applicant!" 학교에서 보내온 이메일.

각기 다른 분야에서 훌륭한 경력을 쌓으신 세분. 제각기 MBA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다르셨지만 "여러 MBA들 중 왜 Chicago Booth에 지원하셨나요?" 하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아래 시카고 부스의 특징들을 언급해 주셨다.


1. Flexible Curriculum: 시카고 부스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들어야 되는 수업은 딱 하나다. LEAD: Leadership Effectiveness and Development 수업. 그 외에는 2년 동안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목표와 방향에 맞춰서 시간표를 짜면 된다.


2. Chicago Approach: 데이터,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 시카고 부스는 데이터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고,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만이 확실한 해답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수업들이 분석 역량을 키워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9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강단에서 Chicago Approach를 선도한다.


이번 글에선 Chicago Booth MBA의 위 특징들에 대한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을 써보고자 한다.




1. Flexible Curriculum: 나에게 맞는 것일까?

1학년 첫 학기 LEAD 수업을 제외하면 시카고 부스에 필수과목은 없다. CPA 소지자가 기초 회계 수업을 다시 들을 필요가 없으며, 뱅킹 커리어를 희망하는 학생이 마케팅이나 오퍼레이션 등의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목표에 맞춰 최적화된 수업일정을 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Flexible Curriculum의 철학은 수업 선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리크루팅을 포함한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시카고 부스는 학생 개인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그리고 책임 또한 개인이 지게 된다. 이것이 시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지원자분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과 궁합이 맞는 학교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가족여행: 학기 중 일주일을 빠져야 된다면, 과연 어떤 주를 택하는 게 맞을까? 비싼 학비를 냈는데, 수업을 빠지는 게 말이 되는가?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내게는 성적보다는 학습이, 그리고 학습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지식을 배우지 않고, 시험 성적으로 평가받는) 중간고사 주에는 학교를 결석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곤 했다. 기말고사 성적만으로 낙제점을 피할 자신이 있다면 충분히 선택 가능한 커리큘럼이다. 책임질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중간고사를 스킵하고 떠난 디즈니월드로의 가족여행


체계적인 프로그램의 부재: MBA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이미 명확하다면 Flexible Curriculum은 최고의 옵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커리어 체인지라는 막연한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가 구체화되지 않았다면? MBA를 통해 폭넓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커리어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Flexible Curriculum은 학생 개인에게 자유와 선택권을 주는 대신, 책임 또한 개인이 지게 만든다. 체계적으로 짜인 프로그램을 따라가며 다양한 기회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사전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을 하면 그제야 학교에선 아낌없는 지원을 제공해주는 형식이다.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 클럽활동, 커리어가 무엇인지 학교 입학 전 사전 파악이 필요한 이유이다.




2. Chicago Approach에 대한 진실과 오해

시카고 부스의 전/현직 교수진에는 9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있다. 수년간 데이터,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인사이트를 도출함으로써 얻어낸 업적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이 있었기에 시카고 부스의 수업들은 대게 분석 역량을 중요시한다. 비즈니스 케이스 기반의 수업에서도 데이터 세트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데이터 분석 툴을 배우기도 한다. 수업 중에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하며 가정과 분석 방법을 토론하기도 한다. Chicago Approach는 분명 살아 숨 쉬는 현실이고 학생들은 데이터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갖게 된다. 나와 면접을 본 MBA 지원자들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Chicago Approach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단, Chicago Approach의 효과와 중요성에 대해 나는 그들과 생각을 달리했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분을 지원자들과 면접 중 토론했었다.


오해: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는 곧 임팩트로 이어진다?

"Chicago Approach를 통해 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르고 싶습니다." 내가 면접을 본 지원자 3분의 공통된 목표였다.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 정석 그대로의 답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성이 차지 않았다.

"왜 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르고 싶으시죠? 인사이트를 도출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MBA 졸업 후 수많은 데이터 분석을 했고, 여러 클라이언트 임원진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 팀장이 되어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PhD들을 팀원으로 두고 빅데이터 분석 및 실시간 분석 tool도 개발했다. 정확한 인사이트를 시기적절하게 도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2017 노벨 경제학상 수사장 Richard Thaler 교수 연구결과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과 정부로 말하자면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를 실행으로 옮기고 실제 임팩트를 내는 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로서 매일 설득과 실행의 어려움을 직접 체감하고 있는 나로선, Chicago Approach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은 높이 사지만 미래의 리더들이 데이터와 인사이트만을 맹신하는 너무나도 완벽하고 논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은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스타일로 실제 결과를 일궈내는 실행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효과를 몰라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쓴 사람 'Droneboy'는,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경영 컨설팅을 경험한 후 미국 Chicago Booth MBA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시카고에서 아내 'Silvermouse'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경영 컨설팅 일을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브런치를 통해 나의 일하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MBA 경영 지식 소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명 '드론보이'는 드론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저를 위해 아내가 만들어준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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