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Jan 09. 2016

미국의 가장 아티스틱한 도시

시카고 퍼블릭 아트 투어

남편이 시카고에 살게 되고, 또 시카고가 나에게 의미있는 도시가 되기 전에는, 난 이 도시가 재미없는 뉴욕의 사촌 동생 정도로 생각했다. 예전에도 한 두번 친구 만나러 시카고에 와본 경험은 있었지만, 그다지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엄청 추웠던 크리스마스 날씨, 미국 전역에서 가장 비싼 소비세와 마땅히 살 것 없는 백화점, 딱히 떠오르는 관광지도 없는 곳. 그래서 시카고는 어디 다른 큰 도시를 들르는 기회에 잠깐 찍고 가는 곳이지 여기가 목적지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카고에 집이 생기고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시카고는 미술과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할나위없이 멋진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길거리에서 어마어마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공공 미술 작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시카고 건축 투어란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시카고는 근현대 도시 건축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더 좋은 점은 Loop 지역에 있는 우리집 근처에 이 모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집 안 거실에서도 창 밖의 이런 멋진 건축물을 볼 수 있고, 또 가볍게 산책만 나가도 만날 수 있다. 초가을 날씨가 추워지는 비오는 밤 11시, 관광객들은 아무도 없는 밀레니엄 파크에서 만난 아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이건 아마도 내가 이 시카고란 도시와 인연이 되어서 허락이 된 장면일 것이다.


밀레니엄 파크 - 프랭크 게리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있어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준다면, 시카고에는 밀레니엄 파크가 있다. 물론 그 규모는 많이 작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야외 아트홀. LA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로 잘 알려진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은 밀레니엄 파크의 중요한 랜드마크이다. 활짝 핀 연꽃같은 디자인의 건축물은 그 건축 자체도 멋지지만, 앞에 잘 정돈된 잔디가 깔려 있어 시카고 시민들의 열린 예술의 전당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여름에는 시도때도 없이 축제가 열리는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연들이다. 보통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저녁 즈음 야외 공연이 시작된다. 어느 날 밤에는 발레 피스티벌이 열려 미국의 유명한 발레단들이 모두 와서 무대를 선보였다. 어떤 날은 '클래식 무비 나잇'이란 이름으로 행사가 열렸다. 요즘 우리나라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유행인 것처럼 그들의 80년대 추억이 묻어있는 영화를 틀어주었다. 야외에서 팝콘과 와인을 마시면서 친구와 가족들끼리 돋자리를 깔아놓고 영화를 즐긴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같은 대목에서 깔깔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고 그러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마 언어를 떠나 나같은 이방인들은 느낄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아일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는 내가 사랑하는 요가 수업을 한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무료 수업인데,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요가를 한다. 요가는 선생님도 중요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데, 이렇게 야외 잔디밭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하는 요가도 온 몸 구석구석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아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누군가 나에게 빈 스케치북 한 장을 주고 시카고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난 아마도 이 콩 모양의 클라우드 게이트를 그릴 것이다. 그만큼 인도계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는 시카고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공 예술작품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리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서 인지도가 높은 아니쉬 카푸어의 스테인레스 철로 만든 작품은 마치 한 방울의 물방울 같다.


어디하나 모난 곳 없이 매끄럽게 표현된 이 작품에 비친 시카고의 건축물들을 보는 것은 시카고를 가장 멋지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내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작품을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참여형 예술 작품으로 손꼽힌다. 내가 꼽는 가장 멋진 작품 감상 시간은 아침 일찍 해뜰 때와 안개가 잔뜩 낀 비오는 날 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이 도시를 품는 큰 그릇이다.



피카소의 무제, 혹은 The Picasso

처음 길을 걷다 이 작품을 만났을 때 설마설마했다. 분명 피카소 같은데 그럴리가 없을 것 같고. 진짜 피카소가 맞았다! 데일리 플라자 앞에 있는 이 15미터 높이의 작품은 피카소가 67년, 시카고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2016년은 원숭이의 해이니 이번에 시카고를 가면 기념으로 여기 앞에서 사진 하나 다시 남겨둬야겠다.  



알렉산더 칼더

이것도 딱보고 왠지 칼더같은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티스트 알렉산더 칼더 말이다. 시카고 연방 플라자 앞에 있는 16미터 높이의 조형물인데 항상 이 근처를 지날 때면 미술대학 학생들이 와서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카고의 아트투어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주요 스팟이다.


샤갈의 사계절

이것 또한 멀리서 보면서 설마설마했던 작품이다. Chase 건물 앞에 있는 이 벽화 작품은 놀랍게도 마크 샤갈의 모자이크이다. 제목은 사계절. 사방면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인간의 사계절이 잘 표현이 되어있다. 이 세상의 꽤나 많은 미술관들을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렇게 큰 마크 샤갈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시카고는 마치 이태리의 메디치 가문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과 도시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투자하고, 또 그런 노력들이 이제는 수 많은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무작정 당대의 유명하고 비싼 작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환경과 가장 잘 어울어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주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아주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시카고에 관광객들을 찾게 하고, 또 도시의 얼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잘 만든 적재적소의 공공미술은 이제 가치를 따지기 힘들 정도로 소중한 관광 자원이다. 시카고가 더 이상 뉴욕의 심심한 사촌 동생이 아닌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 세렝게티 초원에서 여름 인턴십을 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