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섬머 인턴십 리크루팅
한국 달력의 빨간 긴 연휴는 우리 부부의 칠월칠석 날이다. 지난 추석 이후로 학수고대했던 구정 연휴, 태평양 오작교를 건너 난 지금 시카고에 남편을 만나러 와있다.
사실, 지난 가을 MBA 첫 학기를 갓 마친 남편은 좀 지쳐있는 상태였다. 미국은 MBA 1학년 1학기가 가장 중요한데, 섬머 인턴을 어디서 구하느냐에 따라 졸업 후 좋은 직장 취업의 가능성, 그리고 사이닝 보너스(인턴이 끝나고 잡 오퍼를 받을 경우에 미리 받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MBA 전에도 한국의 부띠크 컨설팅을 다니고 있었던 남편은 졸업 후에 그대로 컨설팅에 남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MBA를 갈 때 크게 두세 가지 취업 경로를 세우는데, 하나는 골드만삭스, 크레딧스위스 같은 뱅킹이고, 하나는 맥킨지, BCG, 베인 같은 컨설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Tech, corporation, 즉 우리가 아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이다. 물론 이 외에도 블랙스톤, KKR 같은 사모펀드나 자산관리를 하는 IM(Investment Management), NGO 등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뽑는 자리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소수인 것 같다. 물론 학교의 지역과 순위에 따라 이 분포도는 달라진다고 한다.
여름 인턴십 구하는 건 정말 치열하다. 비유를 하자면 세렝게티 초원에서 한 마리 얼룩말을 발견한 수 십 마리의 맹수들 같다. MBA를 입학하면 잠깐 한두 달 즐거운 생활을 하지만, 인턴 구하기가 시작되는 가을부터는 스멀스멀 캠퍼스에 전운(戰雲)이 감돈다. 물론 학교에서는 여름 인턴을 100프로 보장해주고, 직장의 스폰서십을 받아온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좋은 인턴 자리 구하기는 정말 어려운 듯하다. 남편은 시카고 지역에 있는 컨설팅 회사들만을 타깃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춥긴 추워도 이래저래 다 평균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시카고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남편은 시카고에서 외로이 그 섬머 인턴 구하기를 하고 있었다. 큰 회사는 커녕 보험 들어놓는다는 심정으로 지원했던 회사들에서 이력서 통과도 되지 않아버리는 일이 속출하자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처음엔 우리 남편 정도면 어디 한 군데 정도에선 오라고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실망도 하다가,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어 ‘그래, 그냥 다 떨어지면 서울로 돌아와서 어디 작은 회사라도 맘 편하게 즐겁게 다녀라’고 말해줬다.
구정 연휴를 앞두고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남편이 급히 전화를 해서 합격 소식을 알렸다. 정규직도 아니고, 고작 여름 인턴십이었지만, 가장 원하던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남편을 받아준 유일한 곳이기도 해서 이 기쁜 소식에 오작교를 넘어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내가 시카고에 머물고 있던 2월 둘째 주 정도가 되면 이제 캠퍼스 안에서 하는 대부분의 인터뷰는 끝나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인턴십을 구한다. 각자 입에 크고 작은 먹잇감을 물고 여유롭게 거니는, 다시 세렝게티 초원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보통 리크루팅 순서는 뱅킹이 1월 말에 발표가 나고 이어서 2월 초 컨설팅 발표가 나고, Tech, Corporation 회사들이 2월 중순부터 발표를 한다. 서류 통과부터 1차 면접, 2차 면접, 파이널 면접까지 몇 달 간의 긴 여정 동안 지칠 대로 지쳐있는 학생들은 합격 소식을 듣고 여름이 오기까지 또 신나게 놀 계획을 세운다.
내가 오늘 남편의 힘겨운 여름 인턴십 구하기에 대해서 글을 쓸 거라고 하니, 남편이 꼭 이 얘기를 넣어달라고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여름 인턴십 구하는 것은 인내심의 한계를 넘을 때쯤 비로소 끝이 난다’ 아마도 겉으로는 내가 실망할까 봐 티는 못 냈지만, 이 추운 바람의 도시에서 혼자 마음 움츠리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남편의 절절한 감정이 듬뿍 담긴 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