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구정, 그 다음 날의 기록
요즘 내 일상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아이가 깨어있는 낮 시간에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한참 써놓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어떻게 자판을 두들겨 다 써놓은 글을 통째로 날려버린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끔 아이가 푹 잠이 든 낮잠 시간이나, 새벽에 눈을 떴는데 이렇게 정신이 맑은 날은 짧은 글 하나를 쓰는데 충분히 시간이다.
예전에 비해 내 생활은 단순해지고, 단조로워졌지만, 그래도 이런 지금 나의 일상을 끄적끄적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이 순간뿐이다. 이불에서 나와 어제 마무리 못하고 잔 디트로이트 모터쇼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또 시간이 남아 뭐 하나 더 쓸 것 없나 부엌을 둘러봤다. 글을 쓰려면 사진도 있어야 되기 때문에 우선 카메라부터 집어 든다. 이번 주부터 윤서가 키우기 시작한 화분에 노란 꽃이 피어 여러 장 찍었는데 마음에 차는 사진이 없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 후 동이 트자마자 백화점에 달려가 지금 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장비를 구해왔겠지만, 이제는 새로 사는 것보다 어떻게든 있는 물건에 애정을 담아 더 잘 활용해보자라는 생각이다. 빠듯한 유학생 부부의 살림살이가 준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내 카메라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블로그들을 검색하며 커피 한 잔을 만든다. 네스프레소 기계와 캡슐을 사는 대신,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머그잔에 나름 핸드드립으로 얼마 전 아빠가 쿠바 출장길에 사다주신 커피를 내린다. 여기서는 스타벅스를 가본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근처에 인텔리젠시아 카페가 있긴 하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거기까지 가는 일은 이 추운 시카고에서 너무 소모적인 일이다.
이제 아침 6시 반이다. 좀 있으면 방에서 아이가 '엥~'하고 울거나, 아니면 혼자 용감하게 문 열고 나와서 나에게 달려와 안기겠지. 새로운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