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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pr 15. 2020

학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올 3월에 이제 만 5살이 된 우리집 첫째, 원래대로라면 한국에서 유치원이나 미국에서 Pre-K를 다니고 있어야 될 나이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 유치원을 다니려고 했던 계획은 미국의 점점 심각해지는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어버리고 말았죠. 덕분에 아이는 요즘 무소속입니다. 벌써 두달째 말이죠.


요즘은 한국에서도 EBS를 통해서 온라인 개학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여기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코로나로 인해 Stay at home이 시작함과 동시에 각 학교들에서는 저마다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부모들은 요즘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 챙기랴, 숙제 제출 시키랴 정신이 없다고 푸념이지만, 아무 곳에서도 하라고 시켜주는 곳이 없는 전 그마저도 부러운 요즘입니다.


학교도, 회사도, 심지어 친구들과의 수다도 모두 Zoom 안으로 들어왔다


자, 아이가 아침에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습니다. 좀 더 늦잠을 자주면 엄마의 아침 자유 시간이 조금 길어질 텐데 말이죠. 요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바로 학교 놀이입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가봐요. 어떤 날은 책가방에 메고 나타나 저한테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무슨 수업해요?"라고 하기도 하죠. 처음엔 당황해서 "으응?" 그랬지만, 이제는 '아, 또 긴 하루가 시작되었구나...'라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TV만 멍하니 보다가 하루가 다가는 날들이 이어지자, 어느 날부터는 칠판에 그 날 할 일을 적어보기도 했다.


처음엔 도대체 이 아이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해줘야 하나, 어떻게 하면 지루해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를 한 달 반, 드디어 '우리집 학교'에도 몇 가지 괜찮은 정규 과정(?)이 생겼습니다. 아이의 반응이 꽤 좋았던 수업들 말이지요.


1교시 - 영어 수업

아이 방에 있는 아기 때 보던 책들을 한 번 정리하고 새로 나이에 맞는 책들을 사줘야 될 때가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럴 수가 없어 아쉬워하던 중에 아마존 킨들 eBook을 발견하게 되었죠. 원래는 흑백 컬러의 어른들 책만 있는 줄 알고 어린이 코너는 살펴볼 생각을 안 했는데 한 번 찾아보니 신세계였어요. 웬만한 베스트셀러 그림책들을 eBook으로 볼 수 있었죠. 사실 아이들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실물로 보는 게 가장 좋고 그래야 자기 전에도 침대에서 읽을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때이니만큼 이런 eBook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용 방법은 정말 간단해요. 그냥 일반 PC를 통해서도, 아이패드에서도 킨들 어플이나 프로그램만 다운받으면 볼 수 있죠. 아마존에서 한 권씩 구매할 수도 있고 또 Kindle Unlimited를 구독하면 매월 좀 더 많은 책들을 볼 수 있어요. 또 최근에 알게 된 좋은 정보 하나는, Chicago Public Library 같은 시립 도서관에서도 eBook 대여가 가능하다는 사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그 날 읽을 책들을 미리 다운로드해 놓고 보여주면 좋아한답니다.



2교시 - 수학 수업

한국에 있는 동안 아이는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유치원 아이들이 수학 학원을 연산, 사고력 등 3개를 다 따로따로 다닌다고 해서 기가 막히다고 구경이나 가보자고 했던 게,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고 왔네요. 사고력 수학 학원이라고 이름은 붙었지만 선생님이랑 1대 1로 퍼즐 게임하고, 숫자 익히고, 블록 놀이하고 그런 곳이라 아이가 한 번 수업을 해보더니 자기도 여기 다니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아쉽게도 수업을 두 번 가고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세 번째 수업은 무기한 연기되었지만요. 어쨌든 아주 잠깐이지만 매일 놀기만 하는 아이에게 뭐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되나 깜깜했던 저희도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었죠.


수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금씩 생활 속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부활절이었던 지난 주말엔 아이와 집에서 에그 헌팅을 했는데 칠판에 아빠가 예쁜 그림 차트를 만들어뒀죠. 어느 방에 몇 개의 에그가 있는지 그려두고 자기가 찾을 때마다 와서 숫자를 쓰는 놀이였어요. 여전히 5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10이 넘어가면 헷갈려하기도 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 똑바로 쓰는 날도 오겠죠.


저녁엔 어린이 모노폴리 게임을 하면서 돈 계산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장난감 시계를 가지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맞히기도 하죠. 하지만 너무 티나게 뭘 가르치려고 하면 안되요. 아이가 단번에 알아채고는 "엄마, 아빠, 지금 나 이거 수학 가르치려는거지?"라며 흥미를 잃어버리죠. 이젠 쉽게 안 속는 나이, 다섯살이에요.



또 최근에 프린터를 하나 샀는데 정말 잘 활용 중이에요. 구글에 가서 'Printable Worksheet'을 치면 수많은 수학 프린트물 샘플이 나와요. 어릴 때 우리가 많이 했던 구몬, 눈높이 같은 것들이죠. 요즘은 수많은 온라인 교육 업체들에서 집에서도 프린트를 해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서 몇 장 샘플을 확인한 후에 마음에 드는 것을 구독하면 되죠. 전 Education.com, ABCmouse.com을 구독했는데 온라인으로 게임도 할 수 있고 프린트물도 뽑을 수 있어서 만족해요. 책으로 만들어진 워크북도 좋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그림 많이 나오는 프린트물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3교시 - 체육 수업

요즘 모든 것이 셧다운을 한 미국에선 아이들이 악기도 온라인으로 배운다고 해요. 아직 우리 아이는 악기를 시작하지 않아서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선생님과 Zoom으로 시간을 정해서 수업을 하고 연습을 하기도 한다는데 꽤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또 학교들에선 아이들이 뛰면서 운동을 하지 못하니 유튜브에 있는 좋은 어린이 운동 프로그램들을 소개해주고 체육 수업을 대신하기도 한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많은 학교들이 선택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Cosmic Kids Yoga, 어떤 날은 선생님이 인어공주로도 나오고, 어떤 날은 우주인으로도 나오는 재밌는 테마 요가 프로그램이에요. 유튜브에서 어린이 Boot Camp도 인기가 많아요.



또 아이가 좋아하는 체육 시간은 바로 닌텐도 Wii 게임 중 하나인 Just Dance. 예전에 고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자주 했던 DDR의 어린이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동요부터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팝송까지 리모트 컨트롤을 한 손에 들고 화면에 나오는 춤을 따라 하면 점수가 매겨지기 때문에 저녁 먹고 가족들끼리 게임을 하면 운동도 되고 시간도 꽤 잘 갑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이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죠!)


아이들이 하는거라 쉽게 봤는데 노래 몇 곡 따라서 추다보면 헉헉 힘이 들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대망의 미술 수업. 거의 학교 놀이의 대부분을 미술 시간으로 보내고 있어요. 원래부터 뭐 사부작 사부작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는 이 시간을 가장 즐거워하죠. 집 안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소위 정크 아트이지만, 아이가 어떤 상상을 하고 열심히 그걸 만드는 모습을 보는 건 재밌어요. 이 미술 수업에 대한 건 할 이야기가 많아서 아무래도 따로 포스팅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뭐 되게 열심히 하는 엄마, 아빠 같은데, 사실 저걸 뺀 나머지의 시간은 모두 TV를 보거나 아이패드하는 시간이에요. 이 모든 학교 놀이 수업도 최대한 아이가 TV 보는 시간을 좀 줄여보고자 고안한 방법들이죠. 하지만 어른들도 쉬어야 되고 다른 일상 생활을 해야 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아직 미국은 학교들이 언제 문을 열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른 비지니스나 관공서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더라도 아마도 어린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해야 되는 학교는 가장 마지막에 문을 열지 않을까 싶어요. 그 날이 되면 매일 아침 문을 열었던 '우리집 학교'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닫고 긴 방학에 들어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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