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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16. 2020

우린 미국의 숲 여행 한 달 차 가족

주말엔 숲으로 1- Volo Bog State Area

우리가 숲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


올 봄부터 우리 가족에게 새로 생긴 주말 스케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숲 여행이죠. 우리가 시카고에 다시 돌아온 3월부터 코로나 때문에 미국은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우린 거의 두 달 동안 주말이나 주중이나 변함없이 집 안에서만 갇혀 지냈습니다. 집 앞 마트에 잠깐 장 보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말이죠. 그러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집에 있는 것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아이에게도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그래서 우린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숲으로요.

 

자, 어디를 가볼까 지도를 펼쳐보니, 딱히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저나 남편이나 딱히 자연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어서 평소에 눈여겨본 숲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막간 공부를 해보니 미국의 숲에는 여러 등급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곳들이 나라에서 관리하는 내셔널 파크(그랜드 캐년 같은 곳), 일리노이 같은 주 정부에서 관리하는 스테이트 파크, 그리고 그냥 동네 주민들이 애정 하는 수많은 작은 숲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아, 물론 무명이라고 진짜 이름이 없는 건 아니에요. 각자 이름은 있지만, 덜 알려진 숲들인 거죠.


저 호수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실제로는 물 위에 둥둥 떠있는 특이한 지대


Enter at Your Own Risk!


우린 숲이 처음이니 아이와 함께 걷기 너무 어렵지 않고 숲이 깊지 않은 곳을 가보기로 했어요. 못 빠져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몇 군데 후보 중에서 뭔가 믿음직스럽게 State 이름 붙은 곳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Volo Bog State Natural Area가 우리의 첫 숲 여행지였죠. 원래는 4월까지만 해도 숲 입구에 아예 차들이 못 들어오게 모두 셧다운이 되어있었는데 조금씩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주차장을 오픈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리하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고 공원 안에 있는 네이처 센터도 모두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모든 리스크는 개인이 안고 들어오란 뜻이었죠. 진짜 가도 되나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우린 한 번 숲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숲 중간 중간 등장하는 특이한 나무들은 아이가 숲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게 해준다. 


숲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편하게 타면 좋겠단 생각으로 들고 온 장난감 스쿠터가 큰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로 어마어마한 진흙탕을 만났기 때문이죠. 스쿠터 타는 건 커녕 가벼운 마음으로 숲에 신고 온 우리들의 샌들은 이미 예전에 망가져있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가면 좀 괜찮아지겠지 생각으로 계속 나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가면 갈수록 더 심한 진흙탕이 나왔어요. 아예 발이 푹푹 빠져서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죠. 숲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일을 했다면 이런 날은 숲 입구에 경고문이 커다랗게 쓰여있었을 텐데, 우린 그런 정보도 없이 들어왔으니 아무 준비 없이 이 진정한 야생 체험을 즐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조심조심 진흙탕을 가던 아이도 조금 지나서는 질퍽질퍽한 게 재밌는지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이 정도 늪은 이제 식은 죽 먹기로 갈 수 있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숲 속 놀이터 


이 곳은 깊은 숲이라기보다는 트레일 같은 곳이었어요. 중간중간 나무들로 우거진 숲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새들이 서식하는 작은 호수들도 있었죠. 특히 아이가 이 숲의 매력에 뿅 빠진 건 바로 숲 놀이터 덕분이죠. 이 트레일은 거의 3시간 정도 걸어야 한 바퀴 다 돌 수 있는 긴 구간이었기 때문에 전체를 다 돌 수 없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을 위해 숲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연 놀이터를 만들어두었습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움집도 있고,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한 엄청나게 큰 버섯도 있고, 또 나무마다 아이들이 하나씩 열어볼 수 있게 액티비티 안내문도 달려있었죠. 열심히 이 곳에서 뛰어놀면서 숲에 처음 온 아이는 좀 더 숲과 친해지고 이 곳에서 더 오래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우리의 첫 숲 탐험이 생각보다 재밌고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다음 주에 탐험할 새로운 숲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라 구글맵에서 아무 데나 찍고 온 숲이었지만, 이렇게 첫 번째 숲 여행을 마치고 보니 점차 다른 숲들의 특징, 난이도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가고 싶은 숲 리스트를 하나, 둘 저장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한 달, 우리 가족은 이 날 숲 여행 이후로 매주 주말이면 시카고 근교의 크고 작은 숲들로 탐험을 떠납니다. 매 주말이면 어디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멍하니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숲은, 우리의 여러 스케줄을 꼬이게 만들었던 팬더믹이 미안했는지 떠나기 전에 남겨주고 간 선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카고 근교의 재밌는 숲을 찾는다면 - Volo Bog State Natural Area 

https://www2.illinois.gov/dnr/Parks/Pages/VoloBog.aspx

아주 어린 아이를 동행하는 경우엔 늪이 많아서 좀 어렵지만 5살 정도 아이가 약간의 난이도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곳이였어요. 특히 다른 숲에서는 보기 힘든 숲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안전하고 재밌게 숲을 즐기는 방법을 탐색하게 해주죠. 3시간 정도 되는 길이고 중간에 쉴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은 곳이기 때문에 간단한 간식과 물을 꼭 챙겨가는게 필요해요. 출구로 나오는 지름길이 없고 반드시 한 바퀴를 삥 둘러야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체력을 잘 배분해서 숲 탐험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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