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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12. 2020

미슐랭 스타 셰프의 조금 특별한 요리 수업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사내 복지 프로그램

이제 미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 수는 늘고 있지만, 몇 달 동안 모든 것이 멈췄던 나라가 이제 서서히 다시 돌아가고 있거든요. 물론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각자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 노멀을 찾아서 말입니다. 이제 식당들도 하나씩 테라스 좌석을 열기 시작했고, 시카고의 큰 쇼핑몰은 어제부터 조금씩 운영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가는 걸 조심하기 때문에 한산한 편입니다. 연중 내내 출장이 이어지던 남편도 아마도 올해 말까지는 출장을 대폭 줄이고 집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죠. 


그 날이 그 날 같은 요즘이지만, 이번 주엔 재밌는 이벤트가 하나 있었어요. 남편이 회사에서 선착순으로 모집한 미슐랭 셰프와의 Zoom 요리 교실에 당첨이 되었거든요. 시카고의 Bridgeport 지역에 있는 Duck Inn이라는 식당의 오너 셰프 Kevin Hickey가 진행하는 온라인 요리 수업이죠. Kevin Hickey는 시카고 토박이로 런던, 더블린, 아틀랜타 등 여러 도시의 호텔 주방을 거쳐 시카고 Four Seasons 호텔 식당의 수석 셰프로 미슐랭 별을 받았다고 해요. 그리고는 다시 자기가 나고 자란 Bridgeport 거리에 Duck Inn이라는 자기만의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 식당을 열었죠. (다운타운에 사는 저희는 사실 남쪽에 있는 Bridgeport 지역은 잘 안 가게 되는데 조만간 한 번 가보려고요.) 


이런 예쁜 테라스가 있는 동네 식당이라니!


이 날 만들 요리는 연어와 새우를 활용한 요리였어요. 정확한 이름은, Crispy Wild Salmon and Butter Poached Prawns with Green Garlic Grits and a Pot au Feu of Spring Vegetables. 정말 길죠? 수업을 하기 며칠 전 날 준비해야 될 리스트가 도착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준비해야 될 재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식재료 이름들이 많아서 하나씩 구글에 찾아봐야 될 정도였죠. 하필 이 날 남편이 일이 많아서 미리 장을 못 봐와서 제가 대신해주었는데, 웬만한 재료는 다 구할 수 있는 홀푸드를 갔는데도 못 구한 재료들이 몇 개 있었어요. 부디 요리에 크게 중요한 재료가 아니길 바라면서 수업을 시작했죠. 



준비해야될 재료 리스트가 저거 말고도 한 장이 더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가서 사먹는게 현명한 선택 아닐까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 Zoom을 켜니 오늘 선착순 신청에 성공한 행운의 직원 한 40명 정도가 모여있었죠. 우리도 그중의 한 명이었고요. 사온 재료들을 부엌에 다 꺼내 두고 셰프님의 설명에 맞춰서 셋이 바쁘게 움직였는데, 워낙 손이 빠르신 분인지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도대체 우리를 뺀 나머지 39팀은 어떻게 저걸 따라가고 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였죠. 우리 집 주방은 마치 엄청 인기 있는 식당 주방의 저녁 준비 모습처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보는 Grit이란 옥수수 가루를 가지고 죽을 끓이고, 남편은 연어에 버터 옷을 입혀가며 생선을 굽고, 아이는 야채를 정리하고 버터 껍질을 까는 등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했죠. 


Zoom 수업의 묘미는 중간 중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셰프님께 직접 물어보고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사실 우린 요리하느라 정신 없어 물어볼 겨를도 없었지만. 


기존의 온라인 강의들과 Zoom이 다른 점은, 실시간으로 선생님이 학생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피드백을 줄 수 있고, 학생들도 그때그때 궁금한 점들을 선생님께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 날 같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셰프님께 시카고에서 제일 좋아하는 식당은 어디인지, 어디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하고 좋은 팁들을 얻었죠. 특히 이 날 셰프님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신선하고 깨끗한 해산물을 구하려면 한국 마트인 H Mart를 가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셔서 괜스레 저희가 뿌듯하기도 했어요. 


오늘 요리의 하이라이트. 생선 굽기! 버터옷을 계속 입혀주는 새로운 굽기 방식을 배웠는데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간의 수업이 지나고 셋이서 허둥지둥 따라 했던 요리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Zoom 수업을 들으니 재밌는 일들도 있었어요. 학생들의 요리 실력이 다 다르다 보니, 어떤 학생들은 이미 요리를 완성해서 시식을 하고 '맛있어요!'를 연발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서 맛은커녕 재료를 들고 쩔쩔 매고 있기도 했죠. 다행히 우린 없는 재료는 과감히 날려버리고 있는 재료에 집중한 덕분에 그럴싸한 한 접시를 완성시킬 수 있었지만요. 그리고 맛도, 꽤 성공적이었어요. 재료를 다 준비해서 완벽하게 따라 했더라면 어떤 맛이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했죠.


이 날 우리가 완성한 요리 수업의 작품 완성! 마지막에 올린 초록 이파리 장식이 너무 과한 것 같기도...?


그 날이 그 날 같은 요즘, 이렇게 미슐랭 셰프에게 온라인으로 요리 강의를 들은 건 분명 재밌는 경험이고 시간이었어요. 또 한 편으로는 회사의 사내 복지 프로그램도 앞으로 참 많은 변화가 생기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회사 워크숍이나 사내 복지 프로그램이 직원들이 함께 으쌰 으쌰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이렇게 각자, 따로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으로 말이죠. Zoom 요리 강습을 하는 남편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제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추억이 많이 생각났어요. 팀원들이랑 1박 2일 워크숍도 가고, 이천 공방에 도자기도 구우러 가고, 또 신차 론칭과 시승 행사를 하면서 전국 방방 곡곡으로 떠났던 시간들 말이죠. 유명한 셰프와의 요리 강습도 좋지만, 전 예전의 그 시간들이, 그때의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고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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