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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Aug 23. 2020

어느 날 갑자기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요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길 가다 만나면 항상 묻는다. “둘째는 어디 있어?” 분명 작년까지는 배가 불러서 다녔으니 지금쯤이면 유모차나 아기띠를 하고 다닐 거라 예상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 출산 후 아직 다 빼지 못한 붓기(?)를 제외한다면 날 보고 신생아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밤 수유를 하느라 몇 달째 잠을 못 잔 피곤함도 없고,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기저귀 박스 택배와 쓰레기를 이고 질 필요도 없으며, 이유식 만든다고 머리를 싸매지도 않는다. 당연히 내가 했어야 될 그 행복한 지옥 같은 신생아 육아를 나 대신 한국의 친정 엄마가 해주고 계신다. 벌써 7개월째 말이다.


뒤늦게 막둥이 육아를 경험하시게 된 나의 엄마


사연은 이렇다. 한국에서 남편의 육아 휴직 기간을 같이 보내고 있던 우리 식구는 갓 태어난 막내를 잠깐 친정에 맡겨두고 미국에 돌아왔다. 영주권 취득의 마지막 단계인 인터뷰를 보기 위해서. 그때가 올해 2월 말이었다, 올해 2월 말. 한국은 코로나가 가장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있었고 미국은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되느니, 안 써도 되느니,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뉴스를 내보낼 때였다. 하루하루 분위기가 심해지더니 결국 미국의 국경은 닫혔다. 이민국은 문을 닫았고, 우리의 영주권 인터뷰는 기약 없이 취소되었다.


인터뷰만 끝나면 바로 한국에 돌아가서 둘째를 만날 생각을 하던 우리는 이걸 어찌해야 되나 싶었다. 우리야 계속 기다리다가 이민국 문이 열리고 인터뷰 예약이 잡히면 보고 돌아가면 된다지만 100일을 갓 넘긴 신생아를 기약 없이 책임져야 되는 우리 엄마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으리라. 물론 엄마는 ‘괜찮다, 잘 키우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일 잘 보고 돌아와라’ 하셨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엄마한테 신생아 육아를 맡기는 내 마음은 미안함, 감사함, 그 이상이었다. 물론 표현은 못했지만.


집에서 이발, 줌 클래스, 집 안 캠핑.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시대.



다행히 우린 얼마 전에 영주권을 받았다. 아직 이민국이 문을 제대로 다 열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인터뷰가 면제되어 어느 날 우체통에 이민국에서 보낸 그린카드가 도착해있었다. 이제 다시 둘째를 데리러 가려면 갈 수는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9월에 초등학교 0학년인 킨더에 입학하는 첫째 딸과, 아직 코로나의 늪 한가운데 있는 이 곳에 남편 혼자 두고 가는게 마음에 걸린다. 2주간의 자가격리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좋은 때를 봐서 엄마가 둘째를 데리고 미국에 데리고 오시겠노라고 하셨다. 정답 없는 답지를 들고 여전히 나는 매일 밤 머리를 싸맨다.


코로나가 참 희한한 시간을 만들어냈다. 엄마, 아빠만 믿고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둘째 딸은 자기 부모의 존재 조차 모르고, 아주 먼 옛날 셋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던 우리 엄마, 아빠는 뒤늦게 막둥이 육아를 하고 계시며, 90살이 다 된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늦둥이 육아를 하는 당신 딸을 도와주러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신다. 할머니를 보면 90살이 넘어도 친정 엄마의 역할은, 친정 엄마의 마음은 끝이 없구나 싶다. 7개월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힘들다, 빨리 와라’는 말씀을 안 하시니 유일하게 그 힘듬을 말해주는 건 “우리 엄마 애 보느라 힘들어서 폭삭 늙는다, 빨리 와서 애 데려가라”라고 호통쳐주는 내 동생뿐이다.


엄마 대신 할머니들 품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우리집 막내



딸 키우는 친정 엄마의 역할의 끝은 언제까지인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이 삶이 너무 힘들 때마다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우리 두 딸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줘야지 다짐하게 된다. 행복하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평온하면서도 불안한, 잊지 못할 2020년 8월이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크는지, 아가 너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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