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옐로스톤까지
제 블로그를 쭉 보시던 분들은 알겠지만, 저희 가족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가기 쉬운 따뜻한 섬나라뿐만 아니라, 보통 선뜻 용기를 내기 힘든 곳들로도 말이죠. 예를 들면 아이가 두 살 때 떠났던 그리스 산토리니라든가, 아이의 세 살에 떠났던 페루 마추픽추, 그리고 한겨울의 동유럽 같은 곳들 말이죠.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다 제 아이디어일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전 어려서부터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고 또 다른 부분에선 겁이 많은 편이지만 유독 이런 부분에선 용감하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건 남편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랍니다. 저는 항상 남편이 이렇게 무리한 여행 일정을 짜 올 때마다 가기 싫어서 손사레를 치지만, 결국은 어찌어찌 떠나게 돼요. 그리고 이제 어느덧 아이가 만 5살이 돼서 올 가을 킨더가든 입학을 앞두고 영유아기를 돌이켜보니, 그렇게 무리해서 떠났던 여행들이 평범했던 우리들이 그렇고 그랬던 일상에 알록달록 이쁜 점들이 되어주었어요.
자, 둘째의 출산으로, 그리고 코로나로 한동안 잠잠했던 우리의 일상에 남편이 또 하나의 새로운 색의 점을 또 하나 찍으려고 합니다. 물론 전 이번에도 결사반대를 외치며 보이콧 중이지만, 왠지 결국은 또 그 여행에 동행하고 있게 될 것 같아요. 이번에 남편이 짜 온 여행 아이디어는 바로 '미국 5천 Km 로드트립'입니다. 시카고에서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와이오밍까지 말이죠. 심지어 이 모든 걸 호텔이 아닌 캠핑을 하자고 합니다. 여행 기간 동안 사람을 마주칠 일 없는 언컨택트 여행을 하자고 말이지요.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관련된 프로젝트팀에 들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 남편이 9월에 잠깐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았나 봐요. 집 안에서만 틀어 박혀 있는 생활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지 남편은 평소에는 선뜻하기 힘들었던 로드 트립을 이번 기회에 떠나보자고 하네요. 또 아직 돌이 안된 둘째가 미국에 돌아오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런 로드 트립은 꿈도 못 꿀 테니 그전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자, 이게 바로 남편이 그려온 로드트립 맵이에요. 상상이 되시나요? 전 아직도 머릿속에서 일정이 쉽게 안 그려져요. 미국 땅의 절반 정도를 차 타고, 그것도 캠핑으로 가자니요. 심지어 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캠핑이라고는 한 달 전에 시카고 근교 캠핑장으로 친구들과 떠난 하루가 캠핑 경력의 전부인데 말이죠. 이건 마치 동네 축구장에서 형들 차는 축구공 한 번 '너도 차 봐라'해서 한 번 공찬 경험이 있는 아이를 꿈의 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장에 가서 '자, 공 한 번 차봐. 동네에서 한 번 해봤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겠지요. 전 지금 공 한 번 차본 경험으로 캠핑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하려는 다섯 살 꼬마 같은 마음입니다.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이 도전해도 괜찮을 곳인가, 어리둥절해하면서 말이죠.
어쨌거나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 여행의 추억을 열심히 기록해 놓는 일! 정말 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될지, 아니면 그냥 다 포기하고 일주일 동안 시카고에서 푹 쉬는 휴가를 보내게 될지 떠나는 날까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준비 과정부터 차근차근 한 번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게 우리의 추억이 될 테니까요. (아직도 이 옐로스톤 캠핑 여행에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저를 위해 어느새 남편이 아래 사진들을 제 브런치 글에 저장해놨네요. 가을에 가면 저런 풍경들을 볼 수 있다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