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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08. 2015

아기의 첫 크리스마스 준비하기

새내기 워킹맘의 이야기_2

윤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했던 생각인데, 난 우리 아기가 공부를 엄청나게 잘한다거나 크게 성공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가지고 태어난 그릇이 커서 혼자 알아서 똑똑하게 잘 한다면야 바랄 나위 없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난 억지로 엄마가 만들어낸 트로피 같은 아이로 자라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꼭 바라는 게 있다. 난 우리 아기가 감수성이 풍부해서 자연을 좋아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고, 또 사랑을 많이 받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지난 9개월, 봄, 여름, 가을을 거치는 동안 난 우리 아기가 그렇게 클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었다. 50일이 채 안되었을 때에도 한여름이면 물 속에서 수영을 해볼 수 있게 해줬고, 가을이면 노란 단풍이 든 숲으로 데려가 흙냄새를 맡고 흙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초겨울 추운  새벽바람이 들어와도 창가로 데려가 창문을 열어주어 한참 동안 바람의 냄새를 맡게 해주었다. 또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 오면 작은 아기 고사리 손으로 하얀 눈을 직접 만져보고 놀게 할 참이다. 감기 들을까 걱정은  그다음이다. 그렇게 난 우리 아기가 너무 온실 속에서만 살지 않고, 많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아이로 커갔으면 좋겠다. 



아가는 이제 곧 첫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나중에 기억을 하게 될지 못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마도 못하겠지만), 엄마는 바쁘다. 워낙 치밀하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던 우리 엄마 덕분에 난 비록 13살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게 믿는 순진한 어린이로 살았지만, 또 남들보다 오랫동안 동심을 갖고 살 수 있었다. 난 엄마보다 우리 아기에게 더 오래, 그 기록을 깰 수 있을까? 


지난주에는 고속터미널 꽃상가에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 와서 집에서 장식했다. 사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매년 꾸미는 것을 매우 귀찮은 일이다. 12월 26일만 돼도 갑자기 철 지난 트리는 지저분해 보이는 탓에, 장식물을 정리하고 창고에 집어넣는 일이 번거로워 거의 지난 10년 동안을 작은 크리스마스 리스로 대체했었는데, 역시 아기가 생기니까 집 분위기가 달라진다. 벽난로 옆에 오랜만에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가 12월을 설레게 만든다. 반짝반짝 트리 장식볼을 가지고 놀면서 아기도, 엄마도 신났다. 그 모습을 찍어준 우리 엄마의 사진은 아마도 20년 뒤에 이번 겨울의  빛바랜 추억 한 조각으로 남아있겠지.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의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만든 첫번째 크리스마스 트리 


엊그제 새벽에는 잠에서 깬 아기에게 클래식 FM을 틀어주다  난생처음으로 방송에 문자 사연을 보내봤다. 사실 새벽 4시에 아기는 일어나서 우유 한 번 먹고 곧장 자야지 정상인데, 그 날따라 유독 잠을 안 자고 음악에 맞춰서 우우우 노래를 부르고 아기 침대를 잡고 일어나 엉덩이를 들썩들썩 춤을 췄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려주고 싶단 생각에 큰 기대 없이 문자를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우리 아기 이름이 나오는 걸 들었다. 문자 사연이 채택된 것이다. 예전에 중학교 시절에 '이본의 볼륨의 높여요' 시절부터 그렇게 보내보고 싶었던 라디오 사연인데, 요즘엔 시절이 좋아져서 이렇게 게으른 나도 간편하게 문자 하나로 방송에 나올 수 있다니, 아기도 엄마도 덕분에 신기하고 행복한 월요일을 맞이했다. 이 날 틀어준 파리 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징글벨'은 아마도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아기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 날은 달력의 하루로 지나가버리겠지만, 내가 엄마가 된 후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우리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낄 크리스마스가 따뜻하고, 향기롭고,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아기가 이 세상의 수 많은 날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평범한 날들을 적극적으로 즐겁게 만들고 느끼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이 날의 라디오: KBS 클래식 FM 93.1에서 아침 7시부터 하는 '출발 FM과 함께'의 12월 7일 월요일 방송 7:43분경에 나왔다. 다시듣기로 듣고 또 듣고 하고 있다. 나중에 USB에 담아 타임캡슐에 넣어두어야겠다. 


http://www.kbs.co.kr/radio/1fm/startfm/replay/2431136_51168.html?dt=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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