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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May 31. 2021

자가격리, 우리의 한국식 서버브 라이프

아이 둘과 두 번째 자가격리를 시작하다

다음 주면 드디어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 결혼 날짜가 잡힌 날부터 우리 집 딸들은 이모 결혼식의 플라워 걸 할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6월 초에 시작하는 우리 집 첫째 윤서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려면 아직 보름 정도 남았지만, 남은 수업은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조금 일찍 먼저 들어왔다. 우리 같은 해외 입국자들은 2주 자가격리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우리 둘째를 데리러 세 식구만 들어왔을 때에 이어 두 번째 자가격리다.


시카고에서 가장 예쁜 플라워걸 드레스를 찾아서!


미국 공항에 도착하면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미국식 자가격리와는 달리, 한국은 아주 철저하게 관리가 된다. 미국이 야간 자율 학습 같다면, 한국은 대치동 입시 컨설팅 같다고나 할까. 입국장에서 핸드폰에 어플을 설치하면 우리의 입국 사실이 지자체 보건소, 동사무소에까지 연락이 되어 그때부터 특별 관리가 시작된다. 담당 공무원이 정해져서 입국 후부터 수시로 연락이 온다. 어디에서 자가격리를 하는지, 뭘 타고 올 건지, 어떻게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올 건지 등. 이렇게 매서운 관리만 있는 건 아니다. 자가격리를 시작하고 다음 날 즈음엔 집으로 구호 물품들이 도착한다. 첫날은 보건소에서 마스크, 손세정제, 온도계, 쓰레기봉투 등을 가족 수 대로 챙겨서 보내주시고, 그다음 날은 동사무소에서 밥, 라면, 물, 과자 등 엄청 큰 구호 식품 한 박스를 직접 배달해주고 가셨다. 계속 한국에서 지냈던 사람들에게는 별 거 아닌 물건일 수 있지만, 타향살이를 하다 온 사람들에게는 '드디어 내 집에 돌아왔구나'란 위안이다.


외국에 나와 산 이후로는 나를 집에 데려다 줄 대한항공 비행기만 봐도 울컥한다. 코로나 이후엔 더더욱.



지난번에 자가 격리할 때 지냈던 구미 시골집이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도 역시 좀 멀지만 구미로 내려오기로 했다. 아이들이 집 안에서도 마음껏 뛰어놀고, 밤낮 바뀌어 미국 시간으로 일해야 되는 남편에게도 독립된 우리들만의 공간이 더 좋겠다 싶었다. 인천 공항으로 마중 나오신 아빠가 갖다 주신 차를 타고 우린 구미 집으로 내려왔다. 주택은 아니지만, 하늘이 뻥 뚫린 넓은 베란다도 있고, 그 너머로는 새벽 암탉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절반쯤 시골인 곳이다. 더 이상 서울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있던 가구와 물건들이 있는 내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비록 여기에서 산 적은 없지만)


시골집에서의 자가격리 시간은 꽤 순조롭게 흘러간다. (비록 식구들 모두 각기 다른 시간대로 살고 있어서 거실 불이 24시간 켜져 있지만) 5월 말의 구미는 어느 날은 한 여름처럼 햇볕 쨍쨍 덥다가도, 어느 날은 초가을 새벽처럼 서늘하기도 해서 집 밖으로 못 나가지만 베란다에만 앉아 있어도 다양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날 좋은 오후에는 큰 대야에 물 받아놓고 물놀이를 하는데 호스로 물 뿌려 무지개도 만들고, 장난감 낚싯대로 물고기도 잡으며 시간을 잘 보낸다. 어떤 날은 폭우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렇게 비 오는 걸 처음 본 우리 둘째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창가에 쪼그리고 앉아 비가 땅에 튕겨져 오르는 걸 한참 구경했다. 찰나의 시간이긴 하지만, 아이 둘 다 동시에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엄마가 보내주신 이번 달 잡지들을 읽으며, 이제 나도 서울의 문명 세계로 나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도착하는 쿠팡도 우리에겐 반가운 친구다. 할머니가 매일매일 아이들 지루하지 않게 장난감이나 미술 도구 같은 걸 골라 보내주시고, 미쳐 가져오지 못한 아기 수영복 같은 것도 반나절이면 뚝딱 도착한다. 요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까막눈을 탈출한 아이에게 책을 주문해줬더니 한 구석에 셀프 도서관을 만들어서 사서 놀이를 한다. 미국에서 만든 영어책값도 쿠팡이 아마존보다 저렴한 게 참 신기할 뿐이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바람 솔솔 베란다에 앉아 있으니 어쩌면 서버브 라이프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서 꽤 많은 할 거리들을 찾을 수 있고, 집 안에 자연을 들일 수 있는 전원생활. 사실 지금 나한테 '그래서 서버브로 이사 갈래?'라고 하면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래도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이 간접 서버브 라이프의 매력에 푹 빠져서 '뭐, 언젠가는?' 기분 좋은 바람에 마음이 살짝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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