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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an 28. 2021

눈 오는 시카고의 온라인 하굣길


코로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시카고에선 모든 공립학교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어요. 지난 가을 학기부터 드디어 킨더가든, 즉, 미국의 초등학교 0학년에 입학한 우리 첫째도 온라인 학교를 다니고 있지요. 이제 한창 친구들이랑 뛰어 놀고, 또 언어도 배워야 될 나이에 학교를 가지 못하는 건 속상한 일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좋은 점들도 많았어요. 우선, 미국 초등학교에서 어떤 걸 어떻게 배우는지 궁금했는데 그걸 엿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지난 학기 동안 동생이 미국에 다시 돌아오기 전에 집에서 마지막 외동딸로서 엄마와의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었다는 점 말이죠. 뭐든 일장일단이 있는 거겠죠?


아이의 학교 수업은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해요. 비록 온라인 학교지만 진짜 학교처럼 담임 선생님도 있고, 자기 반도 있어요. CPS(Chicago Public School)의 경우에는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서 수업을 진행하죠. 아침 일찍 15분 동안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고,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 명상 시간이 이어져요.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진짜 학교처럼, 온라인 학교에도 지각을 해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답니다. 바로 우리 집에 있지요. 수업 시간 중간중간 자체 휴식을 하고 딴짓하는 걸 즐기는 우리 아이에게 온라인 명상 클래스는 딱히 필요가 없어 보였나 봐요. 보통 아이는 먹을 것을 챙겨서 8시 45분 진짜 자기 반 수업이 시작할 때 보통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화면을 켭니다.



온라인 교실에 들어가면 담임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면서 환영 인사를 해줘요. 아이 둘을 키우시는 여자 선생님이신데 정말 친절하시고, 특히 외국 생활을 오래 하셨던 분이라 저희 같은 다문화 가정에서 온 학생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이에요. 처음엔 온라인 학교라는 것도, 반 친구들과도 서먹서먹하던 아이들도 이제 한 학기를 지내고 나니 서로 친해졌는지 어떤 아이가 등장을 하면 마이크를 켜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기도 하죠. 보통 수업 시간은 한 과목당 30분 정도로 이뤄지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어요. 킨더가든은 한국처럼 따로 교과서가 있지는 않아요. 빈 공책 하나, 색연필, 연필 그리고 가끔은 색종이, 그 정도가 다예요. 보통은 선생님 화면을 보면서 ABC를 배우고, 숫자 123을 배우죠. 2주에 한 번씩은 특별 활동 시간이 있는데, 스패니쉬나 미술, 체육, 디지털 교육 같은 것들을 해요. 그래도 역시 아이들이 제일 집중해서 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 담임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


재밌는 건, 도대체 뭐 배우는 게 제대로 있을까 싶은 온라인 학교에서도 평가가 이뤄진다는 거예요. 지난가을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집으로 인생 첫 성적표도 배송이 되어왔죠. 사실 전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들어가면, 되도록 방문을 닫아주고 아이가 수업을 하는지, 딴짓을 하는지 계속 들여다보지는 않아요. 중간중간 간식 넣어주고, 컴퓨터가 뭐가 고장이 났을 땐 들어가서 고쳐주면서 슬쩍 잘하고 있나 보는 정도죠. 가끔 혼자 수업 화면을 안 보고 그림을 그리거나 뭘 열심히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기특하게 선생님 질문에 대답도 곧 잘하고 SeeSaw 같은 온라인 툴을 활용해서 숙제도 해요.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이젠 혼자서 떠듬떠듬 얇은 책 한 권을 읽기도 하고, 짧은 일기를 쓸 줄도 알고,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덧셈을 하기도 해요. 저렇게 해서 뭘 배우나 싶었는데 (크게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신기하기도 해요.


이빨 빠진 날 일기. 엄마가 가끔 못 알아볼 때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온라인 학교가 진짜 학교의 꽤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들이 많이 있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하굣길의 추억. 특히 어제처럼 시카고에 이쁜 눈이 가득 쌓인 하굣길이라면 말이죠. 어제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날 때쯤 창 밖을 보니 근처 사립학교(이런 학교들은 진짜 등교를 해요)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눈 쌓인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어제는 특별한 하교를 해보기로 했죠. 온라인 수업이 끝날 때 즈음, 눈에서 뒹굴 수 있는 스키복으로 동생과 나란히 옷을 갈아입고, 부츠를 신고, 썰매를 끌고요.


폭설이 내린 날, 학교 끝난 동네 아이들이 언덕 위에 모였다.



이제 다음 주, 2월이 되면 ‘진짜 학교’ 교문이 조심조심 열립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직접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나머지 3일은 지금처럼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게 되죠. 아마 한동안 그 모습은 예전처럼 친구들과 가까이 뛰어놀고 함께 하는 모습은 아니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야 할 규칙도 많은 학교의 모습이겠지만요. 그래도 아이도, 엄마도 조금 설레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네요. 아이가 진짜 학교를 다니는 건 어떤 모습일지, 어떤 느낌일지, 다음 주가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일하고, 언니는 수업하고, 아기는 여기저기 기웃기웃
아주 가끔, 언니 허락받고 수업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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