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되도록' 매일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자, 이 결심의 시작은 이렇다. 킨더가든을 들어가기 전까지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고 까막눈이었던 아이는 어느 날 단어 한 두 개를 읽기 시작하더니, 최근 한 두 달 사이에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는 단어 두세 개로 만들어져 있는 간단한 문장 책을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금세 아이는 몇 줄 넘어가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지 못해 '집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뭐 배우겠어?',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새 글을 읽을 줄 알게 된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이 책 읽어봐, 이것도 읽을 수 있어?" 지금까지 읽던 수준보다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줬는데도 아이는 책 내용까지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 거기서 멈추고 아이가 드디어 눈 뜬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줬어야 한다.
7살이 영어 에세이를 쓸 줄 안다구요?
아이가 영어책을 줄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자 난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한국의 동네 맘 카페에 들어갔다. 뭔가 아이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서 손 놓고 있던 엄마가 이제는 발 벗고 나서야 될 때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워낙 영어 교육에 관심도 많고 정보도 많은 곳이라 쭉 훑어보니 내가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다. 아이의 리딩 레벨을 나타낸다는 AR(Accelerated Reader), 미국 교과서의 준말이라는 '미교', 학원 입학시험인 '레테(레벨 테스트의 준말)'등 처음 보는 전문 용어들이 무방비 상태의 나를 갑자기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같은 나이 또래의 (이미 달리기 시작한) 아이들은 책 읽기는 기본이고 자기 생각을 담은 에세이 두 장을 빽빽하게 써 내려갈 줄 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실체 없는 불안에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엄마들이 영어책의 정석처럼 공유한 우리 아이 수준에 맞는 책들을 찾아 리스트를 적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 수준 책들을 읽을 수 있는데, 다음 레벨의 책을 사주는 게 맞지 않을까?' 왠지 그러면 책 수준에 따라 아이의 책 읽기 수준도 금세 따라올 줄 알았다. 다음 날 책이 도착했는데, '아차'싶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읽었던 그림이 반 이상이었던 책과는 다르게 높은 레벨 책들은 글씨만 빼곡하게 있었다. 그림이 있는 것도 흑백이었고, 몇 장 훑어봤는데도 내가 모르는 단어들도 더러 나왔다.
그래도 이미 사놓고 포장 뜯은 책들을 환불할 수도 없어 '이 정도는 당연히 읽을 수 있지?'란 표정으로 아이 손에 쥐어줬다. 책을 펼쳐본 아이는 한 두 장 읽는 것 같더니 벌써 지쳤는지 좀 쉬어야겠다고 하고는 또다시 보고 있던 TV를 켰다. 순식간에 버림받은 수 십 권의 글밥 많은 영어책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와 둘째의 도서관 놀이 장난감 소품으로 이용되었다. 뭐 언젠가는 당연히 읽을 수 있는 날이 있겠지만, 이번에 한국에 나와있는 동안에는 힘들 것 같아 보였다. 또 이걸 들고 다시 미국에 갈 것 같지도 않아 이 책들을 사기 위해 노력한 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책값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다들 어디를 향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걸까?
그래서 난 마음을 고쳐먹었다. 괜히 찾으면 찾을수록 끝도 없이 나오는 아이 교육 정보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로드맵을 서칭 할 시간에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해보기로. 매일매일 꾸준히 뭔가를 하는 연습을 아이한테 시키기만 할 게 아니라, 나부터 좀 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체험해봐야 아이한테 밑도 끝도 없는 엄마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난 이번 한 주 동안, 그리고 한 달 동안 나 스스로의 다짐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를 본 다음에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그때 아이의 현실적인 공부 로드맵을 다시 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