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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n 03. 2021

시카고 아이들의 초록색 여름 나기

시카고 몰턴 수목원

서울에 살면 남산 타워에 올라갈 일이 없고, 한강에 가서 유람선을 탈 일이 없듯이, 시카고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사는 곳에 있는 것들은 예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쭉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선뜻 시간을 내서 잘 가게 되지 않죠. 이를테면 시카고의 남산 타워라고 하는 것들은 존 행콕 타워 꼭대기나, 미시간 호수의 페리 투어 같은 것들일 거예요. 아, 시카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퍼블릭 아트들도요. 사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카소나 알렉산더 칼더, 샤갈 같은 미술의 대가들의 초대형 퍼블릭 아트는 사실 다른 곳 가서는 돈 주고도 못 보는 그런 것들인데,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서 보게 되지를 않죠. 또 하나, 항상 지나가면서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즈음 거리에 있는 몰턴 수목원이에요.




몰턴 수목원은 구글맵에서 보면 하나의 큰 숲처럼 보일 정도로 규모가 정말 큰 곳이에요. 제가 이 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속도로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보이는 대형 나무 트롤 때문이죠. 주차장만 해도 스물 한 곳이 있을 정도로 이 수목원을 다니면서 곳곳에 숨겨진 수 십 개의 트롤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언젠가 한 번은 아이 데리고 꼭 가봐야지 했었어요. 하지만 결국 그 트롤 헌팅 계획은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되었어요. 아쉽게도 이곳의 명물이었던 트롤 동상들은 이제 은퇴를 하고 올여름부터는 새로운 여신 시리즈로 교체되었거든요.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갈 일 없었던 그곳을 한국 오기 바로 전날 드디어 가봤답니다. 시카고 사람이면서도 한 번도 온 적 없다고 같이 가보자고 한 친구 덕분이었지요.


와, 정말 이 곳을 왜 이제야 오게 된 건지! 이 곳은 시카고에 있는 그 어떤 칠드런스 뮤지엄보다 더 자연 친화적이고 또 재밌는 곳이었어요. 보통 우리가 수목원 하면, 어른들의 취향이거나, 아이들은 가서 걷거나 꽃 보는 것 밖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심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곳은 정말 아이들이 '초록'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있는 곳이었죠. 이 큰 몰톤 수목원을 하루 만에 다 돌아보기는 불가능한 일이라, 우리는 이 날 수목원 입구 쪽에 있는 '어린이 가든(Children's Garden)'을 가보기로 했죠.


어린이 가든이라고 해서 아담하게 만들어놓은 공간인 줄 알았는데 이 곳은 이거 하나만으로도 웬만한 개울가에서는 올챙이도 잡을 수 있고, 난쟁이들이 사는 집 안에 들어가서 한참을 놀기도 하죠. 걸리버의 주전자처럼 생긴 큰 주전자에서는 시원한 물방울들이 뿜어져 나와서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의 땡볕 더위를 식혀주기도 해요.




여기에선 어른보다 아이들이 먼저 앞장서서 뛰어다녀요. 우리 둘째도 언니 손을 잡고 열심히 뒤뚱뒤뚱 뒤쫓아 다녔죠.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도토리 마을 동화책에 나오는 곳처럼 생긴 도토리 집들도 있고, 또 도토리를 직접 주워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게임판도 있어요. 곳곳에 트리하우스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은 나무 밑을 기어가기도 하고, 타고 가기도 하면서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이 곳을 알게 되어 다행이지만, 만 6살인 우리 첫째가 좀 더 어렸을 때 진작 이 몰톤 수목원에 와서 주말을 보냈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시카고에 돌아가면 꼭 멤버십 가입을 해서 더 자주 아이들을 데려와야겠다 생각을 했죠. 만약 아이들과 좀 긴 일정으로 시카고에 여행 왔다면, 하루쯤은 시카고 아이들이 신나는 초록빛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 곳을 찾아보세요!




시카고 몰턴 수목원 (Morton Arboterum)

https://mortonar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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