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바로 어제, 일요일이 핼러윈이었어요. 원래의 시카고 10월 말은 겨울 추위가 시작되어 패딩이 없으면 지낼 수 없지만, 올해는 유독 따뜻했어요. 덕분에 저희는 미국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핼러윈 분위기가 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죠. 보통은 밖에 나갈 엄두는 못 내고 실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을 했거든요.
시카고엔 핼러윈 행사로 유명한 동네가 몇 군데 있어요. 하나는 시카고 대학교가 있는 Hyde Park 근처(예전 오바마 대통령이 살던 자택이 있는 운치 있는 동네예요)이고, 또 다른 곳으로는 시카고의 대표적인 부촌 Lincoln Park 지역도 유명하죠. 이런 동네는 주민들이 직접 자기 집을 핼러윈 분위기로 꾸미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진심을 다해 꾸미는지, 보는 저희가 고마울 정도죠.
이제 미국은 팬데믹 이후 예전의 일상으로 많이 돌아온 상태지만, 그래도 이번 핼러윈 행사에서 재밌었던 것은 바로 언택트 Trick or Treat였어요. 그냥 단순히 집 앞에 사탕 바구니를 놓아두고 집 안에 쏙 들어가 버리는 재미없는 방법이 아니라, 각자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탕을 나눠주었죠. 홈디포에 파는 긴 파이프를 이어다 붙여 집 앞 계단 위에서 파이프 안에 사탕을 넣어주면 아이들이 그 밑에서 호박 바구니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받는 방식이었죠. 어떤 집은 여기에 진공청소기까지 붙여서 버튼을 누르면 마치 공장에서 초콜릿을 만들 듯 앞으로 튀어나가는 기발한 핼러윈 기계를 개발하기도 했어요.
참 재밌다고 느낀 건,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미국 사람들의 특징이었어요. 누가 강제로 시키면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크게 반발하고 절대로 안 하지만,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다고 느끼면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하는 문화 말이죠. (그래서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한국처럼 확진자를 추적해서 정보 공유를 한다든가, 강력한 자가격리 수단을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했죠. 심지어 마스크 쓰기도...) 누가 꼭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정말 정성스럽게 자기 집을 핼러윈 분위기로 꾸며서 누구든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사탕과 초콜릿을 가득 받아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이 재밌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요.
아, 그리고 올해 제가 본 핼러윈 의상 중에서 최고로 뽑은 건 바로 이거에요. 바로 디즈니 스토어에서 선보인 Adaptive Costumes이죠. 휠체어를 탄 아이들도, 평생 보조 장치를 달거나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도 핼러윈 데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특별한 코스튬이에요. 아이들은 신데렐라 마차나 인크레더블 슈퍼카를 타기도 하고, 또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드레스나 슈퍼 히어로 의상을 입기도 해요. 아마 작년부터 디즈니나 타깃처럼 대중 브랜드에서도 Adaptive Costumes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를 시작한 것 같아요. 여기서 제가 감동을 받은 부분은, 이런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코스튬이 Special이란 이름으로 따로 항목을 나눈 것이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 라인으로 자연스럽게 소개되었단 것이에요. 슈퍼 히어로 라인, 공주 드레스 라인, Adaptive (보정) 라인, 이렇게 말이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이젠 핼러윈 문화가 대중문화 중 하나가 된 우리나라에도 내년엔 이런 멋진 코스튬이 소개되거나 만들어져서 더 많은 아이들이 차별 없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멋진 패션 디자이너분께서 지금 제 글을 보고 계신다면 말이죠! 내년엔 저희도 동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올해의 베스트 아이디어 '진공 청소기 초콜릿 기계'를 능가하는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한 번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