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mouse Nov 10. 2021

마흔 살 인턴이 되다

지난 주 제게는 아주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취직을 하게 되었거든요. 지난 주부터 전 코트라 시카고 무역관에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무려 인턴으로 말이죠!


미국에 다시 돌아온 후 아이들이 차례로 학교로, 데이케어에 가기 시작하고 전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어요. 아이들이 엄마 품을 떠나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저도 이제 다시 저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야 아이들이 좀 더 커진 제 품 안에서 더 자유롭게, 여유있게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우선은 가장 먼저,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어요. 감사하게도 예전에 했던 프리랜서 PR 콘텐츠 만드는 일을 다시 받을 수 있어서 첫 2주 간은 정말 정성을 다해서 기획 자료 라이팅 업무를 했습니다. 십 년 넘게 해온 일인데 또 최근 몇 년 쉬었더니 글 하나 쓰는데 3박 4일은 족히 걸렸던 것 같아요. 또 '비대면', '메타버스' 등 요즘 뜨는 새로운 키워드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얼마나 제가 세상의 변화와 떨어져서 살았는지 실감했어요. 이런 키워드를 제일 먼저 감지하고, 적용하고 알리는 일을 하던 예전의 제가 지금 컴퓨터 화면에 글 하나 쓰기 위해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유튜브 검색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아마도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있는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시 사회랑 저랑 연결시킬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최근에 산 것 중에 가장 행복한 쇼핑, 바로 MS office 최신 버전을 샀어요. 몇 년 만에 생긴 제 첫 수입으로요. 회사를 나온 이후에 제 컴퓨터에는 MS office 무료 버전이나 뷰어만 깔려있었어요. 딱히 쓸 일이 없었으니까요. 카드 결제를 하고 제 랩탑에 최신 오피스가 깔리는데 왜 주책맞게 눈물이 나던지요! 이게 뭐라고 그 비용을 아끼고 살았을까 싶기도 하고, 또 없다가 생기니 이 기능도 신기하고, 저 기능도 고맙고, 그 기쁨은 두 배, 아니 세 배가 되어주었습니다.


오피스를 깔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몇 년 만에 제 이력서를 업데이트한 것이에요. 사실 한국에서 퇴사를 한 이후에는 이렇다 할 경력은 없지만 그래도 미국에 와서 봉사활동을 한 일, 프리랜서 PR  라이터, 아, 그리고 이 브런치 링크도 넣어두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취미로 블로그에 글쓰기를 한 줄 추가했거든요.


이렇게 완성된 '이력서 2021' 버전으로 제가 넣을 수 있을만한 곳이 어딘지 찾아봤습니다. 더 많겠지만 일단 전 linkedin과 Indeed 두 곳에서 알아봤어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홍보 경력 등을 활용할 수 있는 곳들이 어디있는지, 우선 제 집 주변에 열려있는 일자리들을 찾아봤습니다. 미술관 마케팅 어시스턴트, NGO, 보조 선생님 등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곳들을 찾아 하나씩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력서를 넣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 하나 둘 이메일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단계인 인터뷰로 진행할 곳, 아직 인사 담당자가 리뷰 중인 곳, 그리고 서류 통과를 하지 못했다고 알림이 뜬 곳. 그중에서 제 마음속 1순위였던 곳에서 연락을 주셔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합격을 하게 되었죠. 물론, 아쉽게도 정직원은 아니고 두 달간 인턴직이었지만요. 그래도 이런 기회를 주신 게 정말 감사하고,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렇게 전 마흔 살 인턴, 16년 만에 다시 인턴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아침에 아이  학교 보내고 출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퇴근하면 눈썹 휘날리게 집으로 달려가야 되는 스케줄이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고 행복해요.   뒤에 이곳이  미국에서의 정식  직장이 되어줄지, 아니면  다른 기회를 찾아 나서야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계속 해보려구요. 내가 가장 나답게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