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의 홍보인 시절을 마무리하며
지난 몇 달 동안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던 저는 드디어 고백을 했습니다. 이제,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이지요.
작년 가을 시카고로 MBA를 떠난 남편은 지난 구정 연휴, 제가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바로 본인이 가고 싶었던 회사에 섬머 인턴십 자리를 구했다고 말이지요. 몇 번의 쓴 고배를 마신 이후였고, 또 가장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회사라서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이 정말 날아갈 듯이 반가웠습니다. 사실 전 그때 공항 면세점에서 남편이 '다음번 인터뷰'에 매고 갈 넥타이를 계산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실망할 겨를도 없이 계속 서류, 인터뷰 등에 떨어지는 힘든 섬머 인턴십 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편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기 때문이죠.
남편은 큰 고민 하나가 줄어들었지만, 저는 고민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럼 이제 저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저는 한 살짜리 아기를 한국 친정에서 키우며 다니고 있던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거든요. MBA의 섬머 인턴십의 경우에는 대부분 졸업 후 그 회사에 그대로 취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새로 추가된 인생의 노선에 따르면 남편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시카고에 살게 될 텐데, 저랑 남편과 아기가 계속 따로 지낼 수는 없는 거니까요.
남편은 뭐가 걱정이냐, 미국 와서 아기 키우면서 배우고 싶은 공부하고 여유롭게 살아라, 그렇게 말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10년 동안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또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월급 착착 쌓이는 인생을 살아온 제게 그런 변화는 사실 엄청나게 큰 두려움입니다. 더군다나 서울에서는 친정 엄마에 가족에,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까지 함께 사는 편하디 편한 육아를 하다가 이제 샤워를 내 맘대로 혼자 여유롭게 할 수도 없는 독박 육아를 24시간 365일 하려니, 두렵고 또 두렵습니다. 육아도 육아지만, 아침마다 바쁘게 옷을 골라 입고 나갈 직장도 없어지고, 또 뭐 큰 걸 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제가 갖고 싶거나 필요한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월급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하고요. 무엇보다도 갑자기 나만의 일과 직업이 없어질 그 공허함에 혹시나 엄마도 없는 그 멀리서 혼자 깊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미국에 남아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아보기로 결정을 한 후에도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냥 남편과 계속 이렇게 주욱 떨어져 살면서 휴가 때 시카고를 왔다 갔다 할까?', 아니면 '남편보고 그냥 한국에 있는 회사로 다시 취업을 해서 들어오라고 할까?'라고 말이죠. 여전히 무엇이 더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사회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아기와 함께 남편이 있는 시카고로 가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공부엔 영 잼병이었던 저이지만, 혹시 또 늦공부바람이 불어 대학원을 가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아무것도 안하고 가족을 돌보는 전형적인 전업주부가 될 수도 있겠지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가족들이 외국에서 한 번 단란하게 살아보는 것도 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고, 또 왠지 거기서도 좋은 사람들과 기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내린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외국 유학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또 이렇게 35살 아줌마가 되어 아기를 데리고 외국에 나가는 노선을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아기가 없어서 남편과 둘이 외국에 살며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여행 다니고 하면 정말 지금 같은 무거운 마음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더 크겠지만, 전 여전히 지금 제가 한 선택이 맞는 건지 하루에도 수 십 번 생각을 합니다. 계속 고민만 하면 정말 틀린 답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오후, 냉커피 한 잔을 딱 마시고 올라와서 회사에 제 계획을 얘기드렸습니다. 그게 바로 지난 주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퇴사를 고백하고 나니, 이제 시원섭섭합니다. 누구보다도 재밌게 회사를 다녔고, 또 제 분에 넘치는 좋은 직장들을 다니면서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해볼 수 있었거든요.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입니다. 물론 10년 동안 회사 생활하며,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질 정도로 부끄러운 실수도 많이 하고, 또 '진짜 싫다'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마 저처럼 깔깔거리며 즐겁게 회사를 다닌 사람도 없을 거예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앞으로 퇴사까지 두 달, 워킹걸 & 워킹맘으로의 제 인생의 이 시기를 기록해두기 위해 좀 더 많은 제 일 이야기를 글로 써두어야겠어요. 이 시간은 또 쏜 화살처럼 금방 지나가버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