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생활 마감을 50일 남겨두며
7월 초까지만 근무를 하고 퇴사를 하는 것으로 회사와 정리를 했지만, 제 일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이제 50일 정도 남은 것인데, 퇴사를 고백하기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평범하게 일하고 있지요. 퇴사 날짜를 받아놨다고 하니, 사람들이 말년 병장 된 기분이 어떻냐고들 물어보는데, 퇴사 일주일 전이라면 모를까, 아직은 부산 모터쇼도 해야 되고, 몇 가지 매월 진행하고 있는 업무들도 두 번은 더 해야 되고... 아직은 상병의 마음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사에서 얼마 전부터 시작한 탄력근무제 덕분에 지난 5월 초부터는 9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요. 30분 차이인데 아침에 꽤 여유가 생겼어요. 꼭 회사를 관두려고 하면 좋은 제도들이 하나 둘 생겨서 제 마음을 더 아쉽게 만드네요. 아침에 아기와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제가 회사를 가려고 하면 울고 떼를 쓰기 시작하는 아기와 마당에서 십 분 정도라도 더 놀아줄 수 있어서 좋아요.
아기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아침에 엄마 회사 따라가겠다고 제 손을 이끌고 떼를 쓰는 아기와 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셨어요. 예전 같았으면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을 텐데, 이제 이 워킹맘의 생활도 곧 끝난다고 생각하니, 이 사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이제 전업맘 생활을 하게 되면 아침에 아기와 떨어져서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어딘가 바쁘게 나갈 일은 많이 없겠죠?
어제는 제 생일이었는데 미국에 있는 남편이 꽃 선물을 회사로 보내줬어요. 항상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나, 혹은 제가 회사에서 풀이 죽어있는 어떤 날에 서프라이즈 아닌 서프라이즈로 저에게 꽃 선물을 보내주는데요, 이 또한 이제 회사에서 받는 깜짝 꽃 선물도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섭섭했어요."이 비싼 걸 또 보냈어! 집에 어떻게 가져가라고!"라고 투덜투덜하면서도 꽃 선물은 정말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컴퓨터 화면들과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만의 화병에 꽂아두는 꽃은 제 회사 생활에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주었답니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전 지하 꽃가게에 가서 몇 송이씩 사서 꽂아두었는데, 매주 다른 종류의 꽃을 고르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지요.
이 평범한 일상들이 이제 더 이상 일상이 아니라 추억이 되어버릴 시간을 앞두고 있는 요즘, 이 모든 평범한 것들이 괜히 떠 짠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들과 생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어요. 인스타를 통해서 알게 된 최예지 일러스트 작가분이 원래는 제주에 사시는데 가끔씩 서울에 올라와 원데이 클래스를 한다고 해서 다녀왔거든요.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미술 전공을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저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색연필과 수채화 도구를 들고 쉽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편한 마음으로 그리니, 그림 그리는 시간이 요즘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한 시간 동안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고 출근을 했답니다.
드디어 목요일, 주말권이네요. 이번 주말에는 또 어떻게 일주일 동안 외로웠을 아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놀이 계획을 열심히 세워봐야겠습니다. 이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워킹맘의 고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