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인생 첫 독립 여행

by Silvermouse

6월 15일.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이, 결국 왔다. 두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아 둘이서만 한국에 가는 날이다. 첫째에게는 엄마, 아빠 없이 여행하는 세 번째 한국행이고, 다섯살이 된 둘째에게는 태어나 첫 독립 여행이다. 대한항공에는 '혼자 여행하는 어린이' 서비스가 있는데, 그게 만 다섯 살 부터 신청가능하다. 즉,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최연소 어린이란 뜻이다. '보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너무 이른 걸까' 몇 달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둘째에게 물어보니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언니따라 한국 가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언니가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한국 생활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보내는 시간이 미국에서 매일매일 학기 중과 똑같은 섬머 캠프를 가는 것보다 얼마나 더 신나는 일인지 자랑을 해서였던 것 같다. 요즘 들어 이 두 자매는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꽁냥꽁냥 같이 노는 시간도 많아졌다. 첫째는 혼자 심심하게 가는 것보다, 이제 말도 통하고 놀기도 잘 노는 '쪼수' 하나 데리고 가는게 신나는 모양이다. 그렇게 올해 여름 방학 계획이 결정됐다.


사실 첫째는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타고난 면도 있는 것 같고, 또 어려서부터 바쁜 엄마의 생활에 적응해주느라 그렇게 된 것 같다. 벌써 몇 번의 비행을 통해 그걸 증명해냈고, 그래서 별로 걱정이 안된다. 둘째는, 똘똘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막내라 그런지 걱정이 된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 화장실은 혼자 잘 갈 수 있을까, 혹시 쥬스를 바지에 쏟으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 걱정과는 반대로, 아이들은 한 달 전부터 비행기에 가져갈 책가방을 챙겨놨다. 색칠공부며, 워크북이며 하나하나 폴더에 담아두며 비행기에서 시간대 별로 뭘 할지 계획표도 그려놨다. 거의 내 초등 여름 방학 계획표 수준으로 촘촘하다.


한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둘째가 카드를 내밀었는데 'I will miss you so much'라고 적고 우리 가족 그림을 그려놨다. 공항에서 터져야될 눈물이 하루 먼저 터져버렸다.


강아지 셜록이까지 우리 가족을 그려서 선물해줬다.


아이들은 출국장에서 활짝 웃으면서 들어갔고, 심지어 둘째는 언니 손을 잡고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신나게 들어갔다. 한국으로 가는 15시간 비행 시간 내내 나는 Flight Rador란 앱(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을 통해 아이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지금 어디까지 갔는지 실시간으로 계속 찾아봤다. 새벽 2시 반, 인천공항에 잘 착륙을 하고, 아이들을 잘 만났다는 엄마, 아빠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잠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아이들을 돌봐준 승무원 언니들이 이메일을 보내주셨는데, 아이들은 좋아하는 콩순이 TV도 보고, 준비해간 뜨개질도 하면서 편안하게 비행기를 잘 탔다고 한다.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


동생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기라고 했더니, 비행기 타러 갈 때부터 서울에 할머니 만나러 갈 때까지 동생을 꼭 붙들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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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게 보살펴주시는 대한항공 승무원 분들. 엄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객센터에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미국에 살면서 한 순간도 아이들 없이 보낸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아이들이 눈 앞에 없더라도, 내 머릿 속에는 아이들 저녁밥, 학원 스케쥴, 학교 픽업 계획 등이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앞으로 한 달 반, 아마 이 모드는 잠시 꺼둬도 될 것 같다.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하는 이 삶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매일 아침 저녁 아이들 픽업 시간 늦지 않으랴 최단시간 찾아 햇빛 없는 지하 차도, 고속도로를 달리며 출퇴근 하던 삶에서, 걸어서 집에 가거나,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건강한 여름을 보낼 예정이다. 주말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이랑 이 곳 저 곳 훌쩍 여행을 떠나볼 생각이다. 그리고 7월에는, 첫째 백일이 되던 날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처음 떠났던 이태리 투스카니를, 10년 만에 다시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이 여름, 그 특별한 계절의 둘째 날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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