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3월은 여전히 추운 날들이 이어져요. 그런데 신기한 건, 2월 말까지는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기분인데, 달력 한 장 넘기고 나면 어느새 봄의 문턱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실제로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봄바람이 불어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게 해주죠.
'봄이 드디어 왔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동네 마트에 갔을 때죠. 미국 슈퍼마켓의 입구에는 늘 꽃 코너가 있는데, 봄이 되면 그곳에 특별한 꽃들이 등장해요. 가장 먼저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나오고, 뒤이어 개나리 가지가 등장하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벚꽃 가지도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주 마트에 갔더니 드디어 벚꽃이 나와 있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한 다발을 집어 들었어요. 3월생인 첫째의 생일이 있는 주였거든요. 집 안에 오랜만에 꽃을 꽂아 10살이 된 우리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어요. 도자기를 취미로 시작한 친구가 선물해 준 작은 달항아리에 벚꽃 가지를 꽂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 봄이 오기까지 기다렸어요. 역시 상상했던데로 더없이 잘 어울렸죠.
처음 벚꽃 가지를 집에 들고 왔을 때는, 아직 꽃망울만 맺힌 상태였어요. 그런데 따뜻한 실내에 두고 반나절이 지나니, 하나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창밖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우리 집 안에는 어느새 봄이 찾아온 듯했습니다.
아이의 10살 생일이 있었던 주말. 거실에 있는 구글홈이 몇 년 전 오늘의 사진을 띄워 주었어요. 마침 10년하고 하루 전(한국과 미국의 시차 때문에) 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아마도 진통이 시작돼 몹시 힘들어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 사진에는 드디어 아기가 태어난 후 온몸이 퉁퉁 부은 '엄마 1일 차'의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열 번째 생일을 맞으며, 저도 엄마가 된 지 10년이 되었음을 마음 속으로 토닥토닥 자축했어요.
어떤 날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고, 또 어떤 날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았지만, 그래도 My Little Sunshine, 아이와 함께한 지난 10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 말을 잘 듣고 마냥 사랑스러웠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사춘기의 문턱에 선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이제 나도 10년차 엄마.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지켜봐 주기로 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지난 10년처럼, 앞으로 10년 후엔 대학에 간다고 제 곁을 떠나겠죠. 한국에서는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미국에서는 대학 입학과 함께 독립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오늘 하루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