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 부산 이우환 공간
대학생이었던 20대 초반,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왜 아줌마들은 그 작은 돌(=다이아몬드반지)에 무식하게 그 많은 돈을 쓰는걸까? 나한테 천 만원이 생긴다면, 난 그걸로 반지를 사는 대신, 어디어디 여행을 다녀오겠어." 30대 중반이 된 나. 여행도 좋지만, 반짝거리는 다이아반지가 더 좋다.
미술에 무관심했던 20대 초반, 난 정말 궁금했다. "왜 캔버스에 점 하나 찍어놓고 1억이지? 왜 사람들은 그걸 사는거야. 나도 할 수 있는 걸"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우환 화백이다. 그 중에서도 어두운 빈 방에 돌덩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관계항'을 가장 좋아한다. 나이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취향도 변한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요즘 위작 논란이 있을만큼 정말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내 마음에 가장 쏙 들어왔던 장소는 바로 부산 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이다. 2층짜리 건물 전체가 이우환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져있는데, 서울의 미술관처럼 소란스럽지도 않고, 몇 명의 사람들이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특히, 그 도슨트가 억지로 외워서 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이 공간을 처음 설립했을 당시부터 이우환 작가를 옆에서 만나보고 그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게 눈에 보이는 그런 분이라서 그런지 더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나와 어떤 작품을 이어주는 끈, 이런게 인연인가보다.
어두운 빈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저 돌덩이를 어떻게 작품으로 이해할 것인가. 작가는 그 돌덩이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돌이 벽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이우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 어떤 해석도 내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석을 잘 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작품이 놓여질 처음 당시에는 남의 집에 들어온 듯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집을 찾은 듯 편안해진다. 그게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돌덩이들이 여러 개 있는 작품들도 그렇다. 돌덩이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넌 어디서 왔니? 언제 왔니? 여기 이 장소 어떤 거 같애? 여기 좀 춥지 않아?" 그러면서 나도 돌덩이들의 친구가 된 듯 마음 속으로 중얼중얼 대화를 나눈다.
이우환 작가하면 또 잊지 못할 하나의 장소가 있다. 바로 2015년 여름, 출산 후 몸조리를 마치고 남편과 다녀왔던 베니스 비엔날레. 이번에 국제 갤러리가 한국의 단색화를 베니스에서 선보였는데, 거기에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창 밖으로는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곤돌라가 보이는 그 이국적인 장소에서 만난 돌덩이들은 부산에 모여있는 순박한 돌덩이들보다는 조금 더 긴장한 듯 보였다. '외국 손님들도 왔는데 더 잘 보여야지'라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난 베니스에서 아는 한국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많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인생의 이벤트를 겪으면서, 누군가를 만나며, 나의 취향은 변한다. 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본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 모든 것이 서울에만 몰려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 부산, 대구에도 정말 매력적인 전시들을 많이 한다. 이우환 작가가 직접 디자인, 설계를 해서, 그 건물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아직 점 하나가 왜 이리 비싼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라면, 꼭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길 바란다.
http://art.busan.go.kr/09_ufan/ufan01.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