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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거리의 핀란드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

by Silvermouse

예전부터 자작나무숲에 한번 꼭 가보고 싶었다. 북유럽 핀란드에 가면 있을 법한 그 곳은 강원도 어딘가에도 있다고 들었다. 내일이면 혼자 다시 미국으로 떠날 남편과 함께 동해안 일출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표지판을 보았다. 이름도 멋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한 그릇 사먹고 숲입구에 들어가니 거기엔 자작나무가 안보였다. 경비소장님 왈, 여기서부터 한 시간 반을 올라가야 한단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57분. 입산 마지막 시간은 2시이니 문닫기 전에 서둘러 올라가란다. 평소같으면 고민 좀 하다가, '그래, 왠 산행? 다음 번에 진짜 핀란드로 가자',하고 돌아섰을거다. 근데 입장 3분 남았다는 말에 왠지 마음이 흔들렸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살짝 고민했던 컵라면까지 먹고 들어왔으면 아마 우리는 문닫힌 숲을 보지 않았을텐가. 기가막힌 타이밍에 크게 생각할 겨를없이 관리초소에 전화번호를 적고 산행을 시작했다.

꽤 경사가 있는 산둘레길을 쉬엄쉬엄 한 시간 반정도 올라가니 그 숲이 나타났다. 자작나무들이 속삭인다는 그 곳. 하늘로 높게 뻗은 하얀색 자작나무들이 여기가 강원도인지, 핀란드인지 헷갈릴 정도로 멋진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깊은 산 속이라 예전에 내렸던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었다.

왜 이 곳이 깊은 산 속에 들어와있는지 알았다. 너무 쉽게 차로 들어왔으면 아마 그 감동이 덜했으리라. 꽤 긴 산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눈길에 살짝 미끄러지기도 하는 진짜 겨울이 있는 곳, 그 숲에 따뜻한 순백 나무들의 고요한 대화가,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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