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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미술관-올라퍼 엘리아슨 전

리움 올라퍼 엘리아슨 - 세상의 모든 가능성

by Silvermouse

12월 31일, 드디어 해를 넘기지 않고 숙제 하나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리움 미술관에서 하는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회를 윤서를 데리고 다녀오는 것이었지요. 요즘 인스타를 보면 이미 끝나버린 에르메스 전시회 이후 가장 핫한 전시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아쉽게도 에르메스 전은 못 갔지만, 이것만은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될 리스트에 올려두었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그 이름이 제게는 조금 익숙한 아티스트입니다. 바로 제가 전 회사에서 애정을 갖고 있던 BMW 아트카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었던 작가(2007년 아트카 제작)이기 때문이지요. 또 동시에 궁금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16대의 아트카들은 BMW 본사가 있는 뮌헨 BMW 뮤지엄에 가서 모두 봤는데, 올라퍼 엘리아슨의 아트카는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빛과 얼음을 활용한 아트카를 만들었기 때문에 전시를 한 이후에 모두 녹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죠. 아트카의 팬으로서 그 작품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BMW의 수소차 프로젝트인 BMW H2R Project 아트카를 만드는 것이니 사실 그 소재들은 정말 잘 맞는 선택이기도 했지요. 아래가 바로 2007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사라진 올라퍼 엘리아슨의 아트카입니다. 자, 이렇게나 궁금했던 작가가 리움에서 전시를 한다니, 얼마나 제가 반가웠겠어요!


*BMW 올라퍼 엘리아슨 아트카: http://www.artcar.bmwgroup.com/en/art-car/text/Olafur-Eliasson-BMW-H2R-2007-1371.html

Your mobile expectations: BMW H2R project, 2007 Installation at Pinakothek der Moder


아, 그런데 이럴 수가! 분명히 가기 전에는 큰 기대를 안고 갔는데, 미술관에 있는 내내 입구부터 출구까지, 도무지 제 마음에 작품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저기 스프링 작품이 있구나. 물이 거꾸로 흐르는구나. 거울이 있구나. 아, 마침내 이 전시 하이라이트 우산 쓰는 곳이 있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소재만 확인할 뿐, 뭔가 감동을 받거나 생각을 하게 만들지는 못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럴 여유를 부릴 수 없었기 때문이죠.


리움 미술관 입구에 도착한 순간부터 윤서는 '우와, 우와'하며 감동하더니 너무 신이 나는지 막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미술관 문 닫기 한 시간 전이라 관람객이 적었지만, 그래도 아기 다람쥐같이 날아다니는 두 살 아기를 붙잡기에 엄마, 아빠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는 모두 설치 미술이고 대부분 움직이거나 관람객이 참여를 하는 형태의 작품이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윤서는 새로운 작품 앞에 설 때마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차렷 자세를 취했습니다. 전 그런 윤서를 찍어주기에 바빴죠.




이랬으니, 전시회를 다녀온 후기를 글로 남기려고 보니 도무지 기억이 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옆에서 남편은 전시회 다녀온 후기를 글로 써줬으면 좋겠다고 재촉을 하는데 말이죠. 답답한 마음에 전 야매 방법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리움 웹사이트와 다른 블로그들을 보고 대체 내가 뭘 보고 왔는지 역추적하기로 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미 전시회를 다녀온 이후에 작품 해석을 보는 건, '아, 작가가 이런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구나'는 알 수 있을 망정,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기는 어렵지요. 그런 상황에서 전시 후기를 쓰는 건 왠지 문장도 안 써질 뿐 아니라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포스팅은 포기하고, 이 기회에 작품을 글로라도 배우자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가 전시를 제대로 보고 왔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래 올라퍼 엘리아슨이 이번 한국 전시 관련해서 패션 매거진 Vogue와 한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서죠. 아래는 작가의 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젊은 부모들을 내 전시에 초대하고 싶어요. 전시장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은 부모 곁에서 집중하며 느리게 걷습니다. 다 자란 어른들처럼 말이죠.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 경험을 자신의 몸 안에서 정리하고 표현할지 모험가처럼 알아내려는 과정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걸 내버려두는 것 자체를 실패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삽니다. 하지만 저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존중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작품이 무너지면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내 전시는 모험적인 사람을 환영합니다.


기사 전문:

http://www.vogue.co.kr/2016/10/28/%EC%98%AC%EB%9D%BC%ED%8D%BC-%EC%97%98%EB%A6%AC%EC%95%84%EC%8A%A8%EC%9D%98-%EC%A0%84%EC%8B%9C%EB%A5%BC-%EC%A6%90%EA%B8%B0%EB%8A%94-%EB%8B%A4%EC%84%AF-%EA%B0%80%EC%A7%80-%EB%B0%A9%EB%B2%95/?_C_=11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서 다시 사진첩을 뒤적여보니, 이 날 미술관에는 그 미술관 전체에 있던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즐기고, 감동한 한 꼬마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가 환영한다고 얘기한 모험심 많은 꼬마 말이죠. 자기가 움직일 때마다 그 모습을 바꾸는 작품을 보며 놀라워하고, 비가 내리는 작품 안에서는 우산도 치우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깔깔 거리며 좋아했습니다. 아마 할머니가 따라오셨더라면 이 추운 한겨울에 애기 감기 걸린다고 바로 데려 나왔을 텐데, 정말 위험한 일 아니고서는 아이 하고 싶은 만큼 경험하게 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초보 엄마, 아빠를 둔 덕분에 윤서는 제 발로 걸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그 안에서 뛰어놀 수 있었죠.



'여자'에게 미술관이란 내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작품을 통해 고민거리에 대한 답을 얻고, 위로를 받거나 용기를 얻는 곳이었다면, '엄마'에게 미술관이란 내 아이가 이 안에서 엄마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이 안에서 느꼈던 즐거운 감정을 온몸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곳인 것 같습니다. 비록 나 혼자 조용히 다녀왔을 때의 감동은커녕 뛰어다니는 아이 뒤쫓아 다니느라 정신없던 기억만 남더라도 말입니다.


이번 리움 미술관의 올라퍼 엘리아슨 전은 그런 여자와 그런 엄마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참 좋은 전시입니다. 아, 엄마들의 준비물이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인 '무지개 집합'의 빗 속을 맘껏 뛰어다닐 아이들을 위해 우비나,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주세요. 그럼 작품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온 몸으로 즐기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또 하나의 진정한 작품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전시 일정: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html/exhibition/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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