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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Dec 01. 2022

탈출을 꿈꾸던 글쓰기

글쓰기 일기


최근 책 한 권을 읽었는데 다양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었다. 인상 깊게 읽어서 짧은 리뷰라도 써야겠다 싶을 때 문득 나는 언제부터 글을 썼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한 것도 아니고, 어릴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도 없었기에 시작점이 언제더라 하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글을 써봐야지라고 생각한 건 첫 직장에 다닐 때였다. 나한테 첫 직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장애인인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란 불안이 컸던 때에 기회가 좋아 한 학기를 남겨두고 조기취업을 했던 첫 직장.

하지만 취업의 기쁨은 일 년을 가지 못했고 도돌이표처럼 고민과 미래의 대한 불안이 찾아왔다.


내가 여길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와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내게 이직이란 먼 이야기였다. 내가 다닐 수 있는 직장을 또 찾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럼 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6개월 정도 인터넷 쇼핑몰도 해보고 개발자로서 프리랜서도 잠깐 꿈꿔보고 다른 자격증 딸만 한 게 없는지도 살펴봤다. 그때 내가 가장 자유롭게, 어떤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일 중 유일한 하나를 찾았다. 바로 글쓰기.

큰 비용이나 준비가 들지도 않고,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글 쓰기는 장애가 있는 나에게도 아주 좋은 활동 중 하나였다.


그럼 글을 체계적으로 배워볼까?

사이버대의 문예창작과 편입했다가 당시 쇼핑몰을 시작하게 되어 자퇴를 했지만 그쯤부터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공모전을 접했다. 주로 단편 공모전이었는데 막연하게 이런 공모전에서 수상하면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글이 좋다거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탈출의 수단으로서.


나는 막연하게 공모전 수상을 로또처럼 여겼다. 뭔가 확 바뀔 거라는 허무맹랑한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공모전 수상이라는 뚜렷한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때 수업 과제로 썼던 글을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글 쓰는 건 녹록지 않았다.


나한테 재능이 없구나 싶을 만큼 매번 수상자 명단에는 내가 없었다. 기대는커녕 지쳐 갈 때쯤 장애인 문학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눈물이 나올 만큼 기뻤다. 울컥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하자 꼭 안아주셨던 게 기억난다.

그때 공모전 수상은 더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로또처럼 내 삶을 바꿔줄 만한 힘은 없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난 그 후에도 공모전 도전을 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지만 크고 작은 결실도 맺었다.


드라마틱하게 내 삶이 바뀐 건 아니지만 전문가에게 멘토링을 받을 기회도 생겼고 내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마치 그 순간들은 내가 만들어낸 이벤트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수상한 순간의 기쁨도 몰랐을 테고, 멘토링을 받으며 내 글에 대한 고민도 못해봤을 것이며,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을 만지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했을 테니.


글을 쓰는 과정 중에서 수정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있다는 것도,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퇴고를 하며 내 글이 나아지는 걸 보는 게 재밌고 뿌듯하다.


처음은 수단으로 시작했던 글쓰기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되었고 이제는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은 글 쓰는 것보다 고민을 더 해서 문제지만 다시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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