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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Dec 12. 2021

사람도 분류가 되나요?

뉴스나 기사를 보면 화나는 일이 많지만 모든 것에 화를 내진 않는다.

감정을 쏟는다는 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 지금 나에겐 일일이 화낼만한 힘이 없기도 하고.

또 그런 문제들이 비일비재하니 굳은살이 감정에도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가끔은 참 화가 나는 일들이 있다.

특히 화가 났던 건 몇 년 전, 특수학교를 세우기 위해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뉴스를 봤을 때였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 모두가 다 가는 학교.

하지만 장애인 아동에겐 그것조차 기본적인 권리가 되지 못한다.


최근 접한 뉴스 중 어이가 없고 화가 난 뉴스는 지하철역에서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위한 집회를 하자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지시킨 일이다. 출근길 혼란을 막기 위해 지하철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이다.


불법 집회니까. 출근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운행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이런 이유를 들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집회에 참여하는 장애인들만 이용하지 않는다. 출퇴근하는 장애인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수가 아니니까. 그저 불편하고 귀찮은 집회를 막는 게 더 중요할 테니까. 엘리베이터를 막고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시위 같은 걸 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평화로운 방법은 없을까 하고.

하지만 소수일수록 평화롭게 무언가를 얻는 건 없다는 걸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마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류된 삶을 사는 거 같다.

장애인은 장애인의 영역 안에서만 살도록. 밖으로 나오면 눈치를 주고, 불편해하고 성가시게 생각한다.


그래서 저상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그 흔한 일을, 학교에 가야 하는 당연한 일을 쟁취해야 한다.

부모가 무릎을 꿇어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지난 5월 한 지하철역에서 감전 사고가 발생해 이산화탄소 설비가 작동되는 사고가 있었다.

소방대원들과 역무원직원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열차도 무정차로 통과시켜 큰 피해가 없었다고 알렸다. 하지만 두 시간 후, 장애인 화장실에 쓰러진 남자장애인이 발견되었고 결국 돌아가셨다는 글을 나는 최근에 봤다.


사망 원인은 이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소방대원도 역무원직원들도 장애인 화장실까지는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 안타까웠고, 장애인 화장실에 당연히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을 거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건 장애가 없는 '일반' 사람들의 영역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런 영역에 없는 분류된 사람들이 되어버린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런 사고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장애인 인식수준을 보게 된다.


아무리 엘리베이터가 생겨나도, 멋들어진 최첨단 시설이 생겨나도 이런 인식이라면 계속 장애인들은 분류되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아직은 ‘기술’에만 치중한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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