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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Aug 06. 2017

12. 군대 가는 길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편지가 강원도 양양으로 가는 동안 저는 군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마주 보고 합승한 동기들에게 한 친구가 삶은 달걀을 나눠 주었습니다.  

“어제 우리 어머니가 면도날로 내 군복의 실밥을 정리하시면서 우시더라. 맘이 찡하더라고. 자, 다들 계란 먹어. 우리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거야.”  

“고맙다, 영오야. 잘 먹을게. 그런데, 영오야. 네 꺼는 뭐야? 왜 그렇게 커?”  

“내 꺼는 오리 알이야. 너네가 내 오리 알 뺏어 먹을까 봐 우리 어머니가 달걀도 같이 싸주신 거야.”  


어떻게 웃어야 할지 하는데, 머릿속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생각났습니다. 드류베스카야 공작부인은 참전하는 아들이 좀 더 나은 보직을 받도록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녀는 숭배에 가까울 만큼 사랑하는 자식을 데리고 살아가다 보면 무슨 일이든지 익숙해진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일이든지 엄마에게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의 평화를 위한 엄마의 전쟁.     


전라도에 있는 훈련소에서, 저는 초군반 과정이라고 불리는 훈련코스에 참여했습니다. 2주 후 첫 외박을 나왔는데 아내는 토요일 외박 후 다시 훈련소로 가는 일요일 점심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점심을 먹고 도시락을 더 싸주었는데, 한 4인분 정도 되는 양이었습니다. 그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 공터에서 같이 전세 버스를 타던 동기들이 다 먹었습니다. 저는 이미 점심을 먹은 뒤여서 그 음식을 먹을 배도 아니었고, 또 여러모로 번거롭기도 해서 그만 싸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그러나 아내는 계속 싸주었습니다. 저는 아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훈련 과정은 빡셌습니다. 무거운 군장을 메는 것만으로도, 배낭끈이 일으키는 마찰만으로도 어깨에 멍이 들거나 피가 쏠렸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는 야외 훈련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밤에 몇몇이 산기슭을 내려가서 시골 가게에 담배를 사러 간다는 정보가 돌았는데, 그게 훈련 교관의 검문에 걸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탈영이었습니다. 교관이 외쳤습니다.   

“전체 집합!”   

교관이 다시 외쳤습니다.   

“담배 탈영병 좌측으로 열외!”   

몇몇이 좌측으로 나갔습니다. 교관이 다시 외쳤습니다.   

“담배 탈영을 알고 있었던 장병들 좌측으로 열외!”   

훈련병 전원이 좌측으로 나갔습니다. 밤바람이 쌩 한가운데, 교관이 다시 외쳤습니다.   

“엎드려뻗쳐!”   

우리는 야삽으로 맞았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교 운동장의 캠프파이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수개월간의 훈련 과정을 마치고 저는 경기도 운천에 있는 기갑 부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 배치 후 바로 훈련을 나갔는데, 훈련에서 복귀한 그 날 저녁에 바로 환영회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었습니다.


회식자리에서 중대장님이 소주를 따라 주셨는데, 저는 술을 거부했습니다. 제가 술을 거부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제 처신은 중대장님의 기분의 언짢게 했습니다. 제가 따라드린 소주잔을 비우신 중대장님은 제 뒤 쪽, 그러니까 중대장님의 반대 편 벽을 향해 술잔을 던졌습니다.  

“파-악!”  

술잔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학군단 1년 차 생활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학군단에 입단했을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전투복을 지급받을 때, 죽었다고 복창했었다.’    

저와 제 학군단 동기들은 그 노래를 단내가 나도록 불렀습니다. 제 군생활도 단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국방의 의무에 얼이 빠진 어느 날, 부대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였습니다. 왜 그렇게 전화 한 통 없냐며 아내는 울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휴대폰이 없었지만, 그런 건 핑계가 되질 못했습니다. 제 앞가림도 버거웠던 저는 가정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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