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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Sep 15. 2016

2. 밥 잘 챙겨 먹어라. 사랑하는 엄마가.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국민학교 교실은 학생들도 가득 찼었습니다. 한 학년에 12반까지 있었고, 그것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같은 반에는 어려서 다쳤는지 지능이 좀 떨어지는 남학생도 있었고, 몸이 몹시 마른, 아주 허약하고 아픈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옆으로 고개를 돌려 평소 자기를 잘 챙겨주던 자기 짝 너머로 저를 보곤 했습니다. 그 학생 웃는 얼굴이 참 해맑았었는데, 저는 그 친구의 가정이 화목한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비교적 얌전하고 조용한 편인 학생이었지만 저에게도 일말의 자존심은 있었습니다. 국어 시험에 ‘졸졸졸’ 보다 느낌이 큰 말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었는데, 건너편 옆자리의 여정이가 ‘줄줄줄’이라고 몰래 속삭이듯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정이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직감적으로 그게 정답임을 알아차렸지만 답을 적지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틀리고 말겠다는 자존심이었습니다.    


교실 밖 화단에는 빨간 샐비어가 예뻤습니다. 미술 시간에 학교를 그릴 때면 학교 건물과 함께 갈색 운동장, 파란 하늘, 녹색 나무들, 그리고 빨간 샐비어를 점찍듯 그렸습니다. 그 꿀이 참 달았습니다. 샐비어 꽃을 따서 꿀을 쪽- 하고 빨아먹었습니다. 화단 뒤편에는 수돗가가 있었는데,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뛰어놀다가 목이 마르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물을 마셔댔습니다.     


국민학교는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항상 밥상에 메모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김치는 맛있었습니다. 아삭아삭 시원한 김치를 먹으며 메모지를 읽었습니다.     


‘밥 잘 챙겨 먹어라. 사랑하는 엄마가.’    


어머니의 사랑은 메모지 사랑이었습니다. 확신하건대, 어머니는 무한한 사랑을 가졌었지만 그 사랑은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갇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정 조사 설문지에 아버지가 ‘중산층’이라고 적으면 어머니는 그걸 지우고 다시 ‘가정형편 하’라고 적었습니다. 그 설문지도 어머니의 마음을 가두었습니다. 집에는 전축도 소파도 세탁기도 자가용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중산층’이라고 적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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