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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Sep 15. 2016

3. 학창 시절의 기숙 창고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중학교 시절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순간 고등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 중3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반 전체가 맞은 기억이 납니다. 친구 두 명이 쉬는 시간에 싸웠기 때문입니다.    


싸운 두 친구를 선생님께서는 엄하게 다스리셨습니다. 쌩쌩 회초리 소리가 바람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시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이 싸우는 걸 보고도 말리지 않은 사람 모두 나와라.”   


우리 반 모두가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엉덩이를 맞았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단체생활에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을 쳐서 들어간 고등학교는 운영방식이 독특했습니다. 전교 1등부터 꼴등까지 순서를 매겼는데 1등부터 50등까지 1반, 51등부터 100등까지 2반, 이런 식으로 반이 구성되었습니다. 보통은 등수가 잘 바뀌지 않아서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반 친구가 거의 같았고 담임 선생님도 3년 내내 똑같았습니다.     


2학년 때부터 1반 중에서도 15명 정도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시설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기숙사는 작은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내부에 나무판자와 쇠막대기를 어떻게 연결한 침대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7~8인용 2층 침대 2개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당시 등교시간이 8시였는데, 기숙사생들은 아침 6시부터 교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7시가 되면 운동장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 겨울에는 추워서 머리가 빠게 지는 것 같았습니다 - 매점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8시에 다시 등교를 했습니다. 아침 공부 복장은 제멋대로였는데, 주로 난닝구에 체육복 바지와 맨발의 슬리퍼였습니다. 잠을 깨운다고 팬티만 입고 공부했던 선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남자들만 모아두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누구나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영어 같은 책을 펼쳤습니다. 수학책은 그 비싸 보이는 종이를 더럽히지 않을까 조심했고, 영어보다 한문이 더 많아 답답했던 영어책과 영어 사전은 일부러 손때를 묻혀 공부한 티를 냈습니다. 시험 성적도 중요했지만 그 손때도 중요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손때도 검사를 하셨습니다. 아침 6시에 공부하는 학생들을 둘러보신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신 후 출근 시간에 다시 나오셨습니다. 선생님도 무척이나 힘드셨을 것입니다.    


전교 1등부터 15등까지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공부법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특별한 허락이 없다면 일 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 당일만 빼고 3년 동안 우리는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같은 책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던,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지 알 수가 없었던 성일이는 10등 정도였고 1등은 항상 민수였습니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어느 회사 광고를 자주 인용하셨던 한 선생님은, 어느 날 민수를 보고 친구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교탁에 올라간 민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항상 시험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민수는 머리가 좋았습니다. 희태가 키가 큰 것처럼 민수는 머리가 좋았습니다. 키가 크는 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도가 있듯이 머리도 좋아지는 게 한계라는 것이 분명 존재할 텐데 그 사실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너무나 많이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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