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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Sep 15. 2016

4. 고등학교 운동장의 캠프파이어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고등학교 시절엔 머리가 좀 커서 그런지 사건사고가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짜장면 배달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점심때 짜장면 시켜 먹자!”   


친구들 몇 명과 단합해서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것은 가능했고, 재미가 있었고, 물론 맛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하니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가 아닌 봉고차가 배달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만 배달을 시켜서 조그만 오토바이로 배달이 왔는데, 이게 소문이 나서 다른 학생들도 짜장면을 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짜장면 배달은 당연히 선생님께 발각이 되었고 우리는 무자비하게 응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고등학교 시절의 백미는 학교 운동장에서의 캠프파이어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기숙 창고에 들어오셨습니다. 전교 1등부터 15등까지 사용하는 기숙 창고였습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10~20분 정도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잡담을 떨곤 했는데, 그날엔 웬일인지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들을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공부한다고 힘들지? 선생님도 힘들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선생님은 침대에 들어 누우셨는데, 그때 뭔가 엉덩이에 베기는 게 있었나 봅니다. 선생님은 ‘뭐지?’ 하시며  이불을 들추셨습니다. 그러자  아래서 야한 책, 이른바 빨간 책이 튀어나왔습니다. <건강 다이제스트>였습니다. 그 책에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외국 모델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불 밑에서, 기숙 창고 구석구석에서, 그런 책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고구마, 감자 캐듯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우리끼리도 놀랐습니다. 한두 권 정도만 본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노여움에 가득 찬 선생님께서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거 가지고 온 사람, 앞으로 나와!”     


모형수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황보는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 회초리를 가지고 와라.”   


황보정하가 가지고 온 것은 말이 회초리지 몽둥이였습니다. 형수는 ‘엎드려뻗쳐’를 했고 선생님은 풀 스윙으로 그 몽둥이를 휘두르셨습니다. 몇 대를 맞았는지, 폭풍이 휩쓸고 간 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본 사람 나와!”     


우리는 모두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반성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기숙 창고를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약을 사 가지고 돌아오셨습니다. 우리는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서로서로 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빨간 책들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책을 쌓아 놓고 태웠습니다.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야자를 마치고 하교하는 다른 학생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면서 멀리서 우리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걸 보고서는 그냥 얼른 교문을 빠져나갔습니다. 기숙 창고생들에게는 하교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교실로 돌아가서 나머지 공부를 했습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가장 위태로운 소년 시절에 왜 한스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을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을 때면 늘 그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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