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멕시코 출장 후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헝가리 출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전 세계 법인들과 동시에 D-day를 맞이하는 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출장은 출발부터 문제였습니다. 오버 부킹으로 비행기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다른 파트의 출장자들은 모두 티켓팅을 마쳤는데 하필 제 앞에서 딱 걸렸습니다. 항공사 직원들은 빗발치는 항의에 진땀을 흘렸고, 동시에 고객들이 다음 날 비행기를 타도록 설득하는데 애를 쏟았습니다. 항공사에서는 그날 저녁식사와 숙박, 다음날 조식, 그리고 약 10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을 제시했습니다.
당일 업무를 호텔에서 해도 상관없었기에 저는 항공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호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친구 셋이서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들은 횡재했다며 서로를 얼싸안았고, 독일에 유학생 딸이 있어서 자주 간다는 한 중년 부인은 비행기를 열심히 타다 보니 이렇게 보답을 받는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담배나 피고 올 테니 저에게 자리 좀 맡아달라며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마주 보며 웃어 드렸지만 제가 받은 보상금은 회사에 반납해야 하는 경비이었습니다. 문득 감사팀 교육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가끔씩 거래선과 당구를 친 비용을 처리해 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당구비는 지는 사람이 내는 겁니다! 회사에 경비 처리해 달라고 결재 올리지 마세요.”
다음 날, 저는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날아갔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헝가리 법인에서 준비해 준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의 숙소로 향했습니다. 15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은 저절로 스르륵 기울었지만, 이내 저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페스트 지역에서 부다 지역으로 건너가는 다리에서 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그만큼 화려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나 있었고, 와이파이도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헝가리에서 한 달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시스템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고, 시뮬레이션을 하고 또 했습니다. 지난 2년 간 저는 현장 실무 직원들의 대리인으로서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고, 숱하게 시스템 개발자들과 회의와 갈등과 협의와 합의의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막 한 달마저도 무슨 문제가 그렇게도 걸리는 게 많은지, 그 한 달이 마치 지난 2년의 압축판 같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TF팀원들은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한국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유럽에서, 한 달 내내 카톡은 24시간 울렸습니다.
헝가리의 현지 직원들은 지금껏 해온 교육이 무색하리만큼 서툴렀고, 한국에서 온 저희 출장팀도 업무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팀장님이 ‘독일 좀 잠깐 다녀와’ 그러면 짬밥에 밀린 제가 바로 가서 뭐든 조치를 하고 다음 날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2년 동안 준비했지만 모두가 다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시스템은 오픈하였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오픈과 함께 1차 프로젝트는 끝이 나고 시스템 안정화 및 고도화라는 2차 프로젝트가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경영혁신팀의 2차 목표는 구매, 생산, 판매, 물류, 재무, 인사 등 회사의 각 부분이 전반적으로 잘 흘러가는지 모니터링하고 세부적으로 다시 한번 개선 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의 표면적 타이틀은 전사적 자원관리(ERP), 공급사슬관리(SCM), 생산관리시스템(MES)의 안정화 및 고도화였지만 사실 그것은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직원 불만 해결의 전쟁터였습니다.
‘컨테이너에 자재 모두 싣고 수출 준비 다 끝났는데, 시스템에 출고 처리가 왜 안 돼?’
‘시스템에 나오는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수치가 왜 틀리지?’
‘시스템 출력 문서에 오타가 있어요!’
‘시스템에서 다운로드 한 엑셀 파일이 찌그러져요!’
‘시스템에서 구매 자재가 입고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대금 결제 화면에는 조회가 안됩니다!’
경영혁신팀은 해당 건들에 대해서 강제 처리를 하고 시스템 개발팀과 함께 원인을 찾고 하나씩 개선을 해 나갔습니다. 해당 프로젝트의 일정 관리를 위해 솔루션 매니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오픈 후 한 달 동안 접수된 불만과 개선 사항을 해결하는데만 8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부문별로 100여 건이 훌쩍 넘어가는 개선 사항들 앞에서 혁신팀이 혁신 대상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매주 목요일에는 신규 시스템의 운영 상황에 대한 대표이사 보고가 잡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한 관련 자료가 수요일 밤 10시경에 각 부서로부터 혁신팀으로 취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와 팀원들은 다시 그 자료를 시스템 자료와 비교 대조를 하며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보통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업무가 끝이 났습니다.
보고서의 Executive Summary에는 대략 20여 가지의 KPI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주별 성과에 따라 웃는 얼굴 혹은 화난 얼굴 그림 문자를 붙여 넣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ctrl+c, ctrl+v 작업이 새벽 2시의 어깨 근육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림을 없애자는 건의를 한 번 드렸지만 ‘새로 오신 사장님은 원래 그렇게 보고를 받으셨다’라는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매주 저와 제 옆자리의 권 과장은 궁금했습니다.
‘누가 이걸 보고서에 넣자고 했을까?’
‘사장님은 정말 웃는 얼굴, 화난 얼굴 그림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걸까?’
평소에는 밤 10시 정도에 퇴근을 하고, 수요일에는 목요일 새벽 2시경에 퇴근하는 생활은 6개월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어쩌다 더 늦어지면 저는 권과장을 꼬셔서 신당동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바로 출근하곤 했습니다. 회사에는 S급 인재, A급 인재, H급 인재가 있었는데, 저희는 스스로를 더블디(DD) 급 인재라고 칭했습니다. 자칭 뚝심 인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