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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Feb 17. 2020

39. 아빠가 말이야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저는 회사의 경영혁신 TF팀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TF의 미션은 회사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모든 법인들의 시스템을 2년 후 D-day에 Go-Live 시키는 임무였습니다. TF팀은 프로젝트를 위해 강남의 한 빌딩을 통째로 임대했고, 벽에 붙어 있던 TV부터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유리벽까지 모든 것을 저희 회사 걸로 바꾸었습니다. 총무팀은 빌딩의 엘리베이터 동선 최적화까지 신경을 썼고, 직원 복지를 위해서 카페도 새로 입주시켰습니다. 지방 인력들을 위해서 강남의 원룸도 임대해서 제공했고, 주변의 여러 식당과 식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른 아침의 출근 풍경은 다양했습니다. 누구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고, 다른 누구는 지하철 입구의 노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습니다. 저는 김밥파였습니다. 빌딩 벽에 붙어서 회색 하늘을 보며 김밥을 먹었습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무실에서 냄새 풍기는 게 싫기도 했습니다. 겨울 출근길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곤 했는데, 이른바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도입부를 들으면 뭔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비장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김밥을 다 먹고 은박지를 손으로 구기면서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TF는 미팅이 정말 많았습니다. ‘일은 언제 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해외 인력들도 참여하는 TF였기에 통역사를 대동하고 4개 외국어가 회의실에 난립하는 상황에서 진도를 팍팍 빼는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서로 얼굴을 들이대고 하는 회의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콘퍼런스 콜로 미국이나 멕시코, 유럽, 중국 등에 위치한 직원들을 소집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신경과 근육이 긴장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누구는 수입/수출에 관한 커다란 물류 흐름을 세팅해야 했고, 누구는 관계사가 운영하는 테마 파크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으면 재고가 늘어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했고, 누구는 사내 식당의 영양사가 예산을 초과한 식재료를 계획하면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지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싼 재료로 바꾸라는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TF 일정이 종반에 다가가자 이제는 본사에서 중국, 미국, 멕시코, 유럽으로 출장을 가야 했습니다. 현지에 가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지 직원들을 재교육시키고 업무를 안정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 출장을 간 이후 계속해서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D-day가 가까워지면서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한 달 정도의 출장을 마치고 금요일에 귀국하면,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다시 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면 정말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출장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빨리 걷거나 달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비행기 연착으로 발생한 몇 시간의 지연을 그런 식으로 몇 분 만회를 했습니다. 이마와 몸에 흐르는 땀의 보상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저 급한 마음만 더 다급해질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미국 내에서 비행기가 6시간 정도 연착되어 LA 공항에 밤 10시쯤 도착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멕시코 국경 쪽으로 이동을 하니 자정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엔 걸어서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갔습니다. 밤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싸-했습니다. 국경 사무실에서 여권을 보여주고, 검색용 신호등을 눌렀습니다. 운 좋게 파란 불이 나와서 짐 검사 없이 수월하게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멕시코 법인의 도움으로 호텔 측에서 차량을 국경으로 보내주기로 얘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감했습니다. 멕시코 국경은 차량이 대기하는 버스 정류장 같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휑한 공터와 도로 가에 마구잡이로 주차된 차량들…. 저는 제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찾으려 차의 앞 유리창을 기웃거렸습니다. 하나같이 시동은 꺼져있었고 인기척이라곤 없었습니다. ‘쌩쌩’ 거리며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 불빛이 제게 위안과 공포를 동시에 주었습니다. 지난 출장 때 교육시켰던 멕시코 직원이 퇴근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자꾸 회상되었습니다.


한 이십 분 정도 헤맨 끝에 흐린 가로등 불빛에 어른거리는 제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호텔에서 보낸 차량이라고 했지만 호텔 문구도 없는 그냥 흰색의 낡은 봉고차였습니다. 운전기사는 의자를 젖혀 놓고 자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두들겨 그를 깨웠습니다. 거기서 호텔까지는 약 한 시간 거리였습니다. 거칠어진 포장도로를 달리는 그 시간 동안 한 목소리가 떠올랐습니다. TF팀에서 알게 된 분이 테마 마크의 정원을 거닐면서 아들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아빠가 말이야…, 이거 아빠가 만든 거야.”


‘아빠는 무슨 일을 해?’라는 아이의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빠가 말이야, 한 밤중에 혼자서 멕시코 국경을 건넜어’라는 무용담도 대답이 될 수 있을까요? 


몇 년 후, 기계에 푹 빠진 조형예술가 김진우 작가의 드로잉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분의 자녀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아빠의 작품을 보고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아마, 세상 모든 아빠들이 어린아이처럼 자랑하며 말하고 싶을 겁니다.

‘아빠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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