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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Sep 15. 2016

6. 모두의 선망이었던 교회 오빠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교회 동생들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클래식 테이프였는데,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였습니다. 선물로 그것을 고른 이유가 의외였습니다.    


“오빠는 클래식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사실 클래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TV에 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 광고가 나오면 그때 들어본 게 전부였습니다. 10초 정도. 저희 집에는 카세트도 없었고 SONY나 AIWA 같은 일본 워크맨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큰 결심을 하고 국산 ‘마이마이’와 ‘요요’를 사주셨을 때 저와 누나는 저녁 내내 히히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때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들으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어폰은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토요일 공개 방송을 들으면서 웃으며 잠들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잠결에 꼬인 이어폰이 접촉 불량이 되고, 시간이 지나 워크맨도 고장이 났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 형편은 되지 못했습니다. 


나름 교회 오빠라서 제가 그런 선물도 받게 되었나 본데, 사실 진짜 교회 오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형은 말 그대로 ‘교회 오빠’였고 모든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선 그 교회 오빠는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교회 반주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면 그 ‘오빠’가 대신 그 자리를 메웠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의 주특기는 피아노가 아니라 바이올린이었습니다. 대학 전공을 준비하듯 실력을 쌓아 올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준비한 연주도 멋있었지만 어떤 모임 중에 각종 가요나 클래식 십여 곡을 메들리로, 그것도 즉흥적으로 들었을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교향악단의 객원 바이올린 연주자 그 오빠는 운동도 잘했습니다. 테니스 복식경기에서 우승했다고 지역 신문에 기사가 난 적이 있었는데 같이 경기에 출전한 복식 파트너가 그 오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사실이 다른 모든 것보다 부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이 오빠의 직업이 바이올린 연주자도 테니스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이 오빠는 판사를 거쳐 법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이 오빠는 어릴 적에 역시 교수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 지역 청소년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고, 사시 패스 후에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이 오빠의 어머니가 음악을 전공하셨는데, 조기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그걸 온전히 소화해 낸 이 ‘교회 오빠’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 속의 이 오빠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겐 고등학교 당시 유명했던 <7막 7장>의 홍정욱이나 고시 3관왕 고승덕보다도 이 ‘교회 오빠’의 존재가 훨씬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책이나 방송이 아닌 제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여러 지역이 모인 합동 모임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소문이 자자한 이 ‘교회 오빠’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포크 댄스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이른바 '춤선생'이 그 교회 오빠였습니다.     


교회 모임을 통해서 그 교회 오빠의 가족 연주를 몇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들들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상류층이나 중산층, 서민 같은 말을 들어만 봤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개념은 전무한 아이였던 저는 그저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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