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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Dec 20. 2023

살면서 배운 작은 규칙들

그냥 사는 이야기


1. 위기는 뜻밖의 반가운 손님이다.


 

  손님이 오면 예정에 없었던 집안 청소를 반 강제적으로 하게 된다. 덕분에 일 년 내내 적절하게 집안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직장 때문에 생긴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의도치 않은 것이든,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이든 그 새로운 것을 실제 시도하도록 떠밀렸고, 그래서 성공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신입 4년 동안 저축한 얼마 안 되는 돈을 다 긁어모아 재취업 보장 없는 유학을 떠나야 했던 귀족스러운 위기부터 이직한 회사의 텃세로 사오정 될 뻔했던 위기에서 과감히 새로운 직업과 시장을 찾아 나섰던 때, 그리고 구조정이 되면서 계약직이라도 반가왔던 처절했던 위기까지. 덕분에 현재에도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로 무사히 가족을 부양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내가 하는 일들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 위기는 평균 4년 주기로 찾아왔다.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그냥 있었다면 헤어 나오지 못할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다친 근육이 강해지는 것처럼 그런 심리적 상처 덕분에 멘털도 강해지고 회복력도 얻을 수 있었다. 세렌게티 들판의 영양들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자 덕분에 360도 시야와 튼튼한 다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위기가 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그냥 있다가 잡아 먹히지 말고 '고맙게도 드디어 움직일 기회를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자.  


2. 비교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주변의 친구 동료가 내가 꿈꾸던 직장으로 가거나, 승진하거나, 멋진 집을 사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늘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남의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좋은 것이 더 많이 보이고 내 것, 가까이 있는 것은 단점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나의 연봉, 내가 타는 자동차, 나의 직업, 나의 정신적 성숙함, 나의 지식, 나의 육체적 강인함을 남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늘 자기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사람이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 보면 행복감을 느낄 수 없으리라. 배우자를 찾을 때도 항상 자기보다 잘생기고 능력 좋은 사람을 쳐다보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알아채지 못하고 세상에 내게 맞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게 된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던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바라보면 난 늘 불행하다. 그래서 나는 오직 어제의 나만을 현재의 나와 비교하기로 했다. 어제보다 건강하고, 어제보다 더 지혜로워졌다면 난 행복하다. 남들과 나, 남의 것과 내 것을 비교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들끼리 비교하며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정말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나,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이가를 생각해야 한다.


3. 현재에 집중한다.


  나는 5년 단위로 큰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매해 초 이루어야 할 일들을 10가지 정도씩 글로 적었었다. 그중 두세 가지씩은 실제 성취할 수 있었다. 5년 단위로 70세까지의 미래도 구상을 했는데, 몇 가지는 이루었고, 몇 가지는 거의 이룰 뻔하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5년 단위의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고 크게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듬성듬성한 미래계획이다. 하지만 1년 안에 일어나야 할 일의 계획은 구체적이고 많은 고려사항을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한 두 달의 짧은 프로젝트에도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전체적인 설계를 완성한 후에 일을 진행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계획대로 완결된 프로젝트도 없다. 항상 많은 변수도 있고 나의 초심이 변한다는 것도 하나의 변수였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전략을 바꾸었다. 미래의 방향을 잡을 필요는 있지만 너무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집중한다. 세상은 변수가 너무 많다. 그 변수들은 내가 어떻게 예측할 수도 조정할 수 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의 최종 모습은 내가 계획한 것보다 수많은 변수로 인해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내가 기대했던 구체적인 어떤 미래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 거의 대부분 그렇게 된다. ) 무력함과 무능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다.


  오늘 하는 일과 성취하겠다고 마음먹은 어떤 일이 있으면 그냥 시작하고 진도를 나간다. 큰 방향을 잡은 후엔 작은 세세한 방향을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일단 진행을 하면 보이게 되고 그때마다 가끔씩 방향 수정만 하면 되지, 정확히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고 시작하려면 영원히 시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 거의 내가 의지를 갖고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냥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상적인 완성된 어떤 모습을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그 대체적인 방향의 어딘가에는 가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행복은 그 목표지점에 도착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불발될 수 도 있는 한 번의 어떤 큰 성취에서 얻는 행복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느끼는 하루하루 성취에서 오는 수많은 작은 행복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4. 뒤돌아 보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이미 터득한 규칙이다. 학교 시절, 시험기간에 친구들은 시험 한 과목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서로 답을 맞혀보기 바빴다. 그중 반에서 1, 2등 하는 우등생의 답을 제일 궁금 해들 했다. 물론 그들도 확답을 줄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난 시험을 치고 나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답을 비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내 시험성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럴 시간에 그냥 다음 시험준비를 했다.


  작년에 집을 팔면서 더욱 와닿게 느꼈다. 집값이 고점을 치고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집을 팔기 위해 내어 놓았다. 중간에 적절한 가격제안이 들어왔지만 애초에 고점에서 부동산업자가 평가한 가격을 기대하면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동산 시세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5개월 후 결국, 앞서 제안받았던 것보다 더 낮은 가격에 집을 팔게 되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면 그때 팔아야 했는데라고 본전생각을 할 것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그랬더라면..'과 같은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게 좋다.


  공시지가나, 판정가나, 주변 시세가 아니라 실제 거래된 가격이 그 주택의 가치이다.  현재의 내연봉이 내 기술의 가치이고, 주식은 팔았을 때 그 가치가 결정된다.  집안의 일이나, 직장에서 일이 잘못되면 '그래서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데'라고 접근하지 '누구 잘못이지'라고 접근하지 않는다. 구직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지원할 곳을 찾는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고 우리는 오로지 미래에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난 뒤돌아 보지 않는다.


5. 대세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면 무시해도 된다.


  아마도 이건 나 같은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규칙일 것이다. 일상은 수많은 작은 결정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결정들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매우 많다. 볼펜 한 자루 살려고 해도 고민에 빠지고 여러 가지를 비교 분석하고 전자제품 하나 사기 위해서도 온갖 브랜드와 가격대를 화면에 띄워놓고 스펙을 비교분석하고 제품리뷰 유튜브영상을 몇 개나 봐야하기 때문에 그런 고려사항 하나하나가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특히  비교분석과 정리정돈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지나치기 어려운 일종의 놀잇감이며 비교분석해서 완벽한 선택을 했을 때, 책상 위 모니터 화면이 완벽한 수평을 이룰 때 생기는 편안한 마음자체가 마치 중독이 되기 쉬운 액상과당과 같은 것이다. 우영우는 김밥도 일렬로 세워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온갖 비뚤어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간격이 맞지 않은 커튼버티컬, 수직이 아닌 전봇대, 색이 다른 가로등불, 키가 정렬되지 않은 책꽂이의 책들, 끝까지 닫혀있지 않은 옷장 서랍 등...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해석해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할 시각적 정보들이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런 것을 비교하고 교정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정보의 홍수에 살다 보니 그 홍수에 빠져 허우적 되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우리 아이가 새우, 콩나물국, 브로콜리는 먹지 않으면서 각종 과자와 케첩의 미묘한 단맛을 비교하며 선택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사실 그런 다양한 선택사양은 마케팅의 수단으로 나온 것이 대부분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에 시간을 쓸 수 있는 호사스러움에서 생기는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뉴질랜드는 제조업이 거의 없는 나라다. 상품의 선택권도 브랜드의 선택권도 별로 없다. 선택권이 없어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편하다. 마치 마크저커버그나 스티브잡스가 아침에 입을 셔츠와 바지를 선택하는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늘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것처럼, 대세가 아닌 작은 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아껴서 더 중요한 것에 투입해야 한다. 등산복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등산자체에 집중한다. 자동차의 연식이나 엔진연비, 360도 카메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동차를 가지고 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래서 편하다. 요즘엔 누가 문콕해도 신경쓰지 않는데, 대세에 지장이 없다.



6. 금을 캐려면 흙을 손에 묻혀야 한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 안에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섞여 있다. 어떤 직종을 선택해도 재미있어하는 부분과 세상 쓸 때 없어 보이는 부분이 함께 주어진다. 어떤 물건을 사게 되어도 항상 '이 부분만 이렇게 생겼으면 완벽할 텐데'라고 하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도 '과목은 재미있는데 교수가 마음에 안 들어'와 같이 내가 싫어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살 수 없고, 뭘 해도 불만족스럽고 다른 것에 눈길을 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던 필요하고 좋아하는 부분을 보고 선택을 하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고 쓸 때 없고, 불편한 것이 함께 려오더라도.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에 비해 시야의 폭이 넓어 항상 전체를 보고 관계성안에서 대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어떤 정책에 반대하는 일부사람들의 의견, 디자인개발에 개입하는 일부 부서와 상사의 의견, 나의 생활 패턴에 영향을 주는 주변 친구와 이웃, 친척들의 시선을 모두 반영해야 하다 보니 정작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목적을 뾰족하게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모두를 만족시키는 평범하고 심지어 원초적 목적을 상실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형평성'이란 단어로 포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으로 가족을 놓고 일하러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연봉을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직원 기준으로 책정했다. 해외에서 데려오는 사람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로 인한 상대적 불평등 때문에 생겨날 수도 있는 주변 직원들의 불만족 때문이다.  금액상으로는 그들과 내가 받는 것이 동일하지만 그 돈으로 어떤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확연이 다르다. 국내에서 이직하는 경우 당연히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연봉을 고려하게 되고 실제로 기업들은 그 정도를 보장해야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외국에서 채용되어 들어오는 직원의 경우 해외에 있는 집과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드어가는 비용을 고려해야 하지만.  한국기업에서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아 래 의도했던 선진국의 우수한 인재들을 데려오는 게 아니라 그 나라에서 싼 연봉레인지에 속한 인재를 데려오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나도 손에 흙을 묻히려고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항상 얘기한다.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켜줄게. 대신, 어쩔 수 없이 딸려오는 싫어하는 것들도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인생은 달콤한 과자와 같이 맛있는 재료들로만 이루어져있지 않다. 맛있는 대게의 속살을 먹으려면 날카롭고 딱딱한 껍질을 벗겨야 하고, 멋진 복근을 가지기 위해서는 땀에 쩐 옷을 견뎌야 한다. '그러니 네가 원했던 그 부분에 집중하고 그 외에 겪어 되는 불편하고 힘든 것은 그냥 무시해라.'.

  

7. 매번 판단하지 말고 자동화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어떻게 핸들을 움직이지 매 순간 판단해야 하지만, 몸에 익으면 자동화되고 멀리 풍경을 감상하면서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자동차운전도 마찬가지다. 차선을 바꿀 때는 무조건 머리를 돌려 사각지대를 확인한다. 옆 차선에 차가 있었던 없었던 그리고 뒤에 차가 있던 없던 방향지시등을 켠다. 이렇게 하면 매번 그런 상황에서 판단할 필요 없다. 또 다른 예로 비가 오건 안 오건 가방 안에는 늘 우산을 넣어 다니고, 가게에 우산을 가지고 들어가면 항상 우산을 발옆에 세워둔다.


  물론 많은 경우 필요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만 이미 자동화되어 아무런 에너지가 들지 않고 심지어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에 하나 사고가 날뻔한 상황에서도 사각지대에 있던 상대차에게 피할 시간을 주어 나도 모르게 사고를 피하게 되고, 놓고 갈뻔한 우산이 발에 걸려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아이에게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일 때도, 1주일에 3번 이렇게 하지 않고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이렇게 정한다. 1주일에 3번이면 상황에 따라 어떤 요일에 써야 할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습관으로 길들이 매우 힘들다. 하지만 정해진 요일에 무조건 쓰게 하면, 언제가 예외상황인지, 언제가 예정된 상황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기 때문에 습관을 들이기 쉬워진다. 사실은 초등학교 때의 일기는 내용보다 글쓰기의 습관들이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규칙적이긴 했지만 덕분에 나는 대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까지도 일기를 썼다.


  자동화는 많은 에너지를 아껴준다. 평소에 세세한 사물인지나 비교 등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했던 나에게는 매우 유용한 에너지 절약법이 되었다. 항상 정해놓은 곳에 지갑과 열쇠를 두는 게 자동화되면 물건을 찾을 일 없이 항상 거기에 가보면 된다. 잠깐이라도 현관 밖을 나갈 때 항상 문에 걸려있는 열쇠를 손에 쥐고 나간다. 그렇게 하면 문이 안에서 잠기는 상황이 오더라도 문제가 없다. 매번 열쇠를 들고나갈 만큼 멀리 나가는지 잠깐 나가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것들 외에도 나의 INTJ 성격 때문에 만든 규칙도 있긴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들이기 때문에 각설하고, 위의 규칙들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는 규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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