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이스댕 Nov 18. 2023

왜 최선을 다하는데?

디자인 에세이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새로 나온 이 제품에 왜 이 기능을 넣지 않았을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또는 이 부분을 요렇게만 디자인했다면 훨씬 잘 팔릴 텐데 이 회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서 다른 대안이 없으면서도 이렇게 아쉽게 만드는 걸까 질문하게 된다.


내가 학교에서 디자인을 배우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 팔리고 있는 디자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의 일종의 철학과 괴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지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불합리한 사회경쟁 구조에서 살아왔기에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잘못된 믿음이 아마도 아닌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디자인에 대해 공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디자인은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까지 되었다.


디자인은 학문적 의미에서 인간중심적 설계이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얼마나 빨리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는 들어있지 않다. 왜냐하면 학문적으로는 우리가 이상향 (방향)만을 논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경쟁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사회에 나와 디자이너로 살다 보니 기업 간의 경쟁이 디자이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경쟁에서 기업이 이기는 기본적인 방법은 경쟁사의 고객을 지속적으로 더 데리고 오는 것이다. 그러려면 좀 더 편리한 기능과 멋진 디자인을 경쟁사보다 한 시즌 빨리 내놓아야 한다. 새로운 것을 계속 상상해 낼 디자이너가 필요해진다.


현재 것이나 경쟁사 것보다 조금이라도 좋으면 고객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최선을 다 할 필요가 없다. 고객이 움직일 만큼만의 최소 노력과 투자를 한다. 어차피 대부분 고객들에게는 그 작은 변화마저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고 돈을 지불하고 한동안 만족하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제조기업들 입장에서는 작은 개선을 통해 더 많이 고객을 서로 주고받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이익을 남긴다. 많은 투자비로 현재의 상품, 경쟁사의 상품보다 획기적으로 더 좋은 것을 만들어도 경쟁사도 역시 금방 따라오기 때문에 투자대비 그 효력이 그리 길지 않다. 다시 말해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개선의 폭을 점점 키워야 하는 (투자를 점점 많이 해야 하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기업의 군비경쟁으로 생기는 디자이너의 피로도를 막기 위한 게 아니다. 


기업들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놓아도 소비자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몇 개월 아니, 몇 주만 지나도 새로운 디자인의 자동차, 최신 패션의 스니커즈에 대한 감흥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을 다시 갈망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로지텍 M570 무소음 마우스를 구했을 때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로지텍 Lift 마우스가 나오자 M570은 나에게 더 이상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되었고 Lift를 욕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Lift 마우스를 손에 쥐고 있다. M570은 멀쩡한 건전지를 품고 산 송장이 되어 벽장에 누워있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고 무엇으로도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밑 빠진 욕망의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디자인진화 속도와 소비사이클 증가는 결국 사람들의 욕망의 피로도를 증가시키고 지구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것, 소비자의 욕망은 원초적으로는 자연계의 생존경쟁에서 비롯된 진화심리임을 감안해 보면 나는 최선을 다해 디자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시시대에서의 그런 욕망은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다른 많은 생존과 번성의 수단을 가지게 된 현생인류에게 상품에 대한 욕망은 마치 필요 이상의 당분을 섭취하고 있음에도 계속 단것을 원하게 되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인간본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요즘 서로 경쟁하는 기업들은 상품을 한번 업그레이드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소비자의 욕망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한 번의 큰 개선이 아닌 더 빠르고 빈번한 개선으로  작은 욕망충족의 횟수를 늘려서 절대적 소비양과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디자이너라는 직업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로 기업에서 월급을 받고 자신의 생존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오천시간 사용할 수 있는 백열전구 다음에 백만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전구회사는 만 시간까지만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만든다. 그래도 사람들은 만 시간짜리 전구에 만족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므로. 


더욱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개선에서 오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느끼는 것이다. 어차피 100년 후 미래 세계에 비해 현재 우리는 엄청 불편하고 못생긴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불편함이란 상대적인 것으로 더 편한 것을 알면 알수록 현재 것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고 더 편해지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게 커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구하고 얻어서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키는 사이클이 증가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도파민이 필요로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1000년 전의 사람들이 과연 당시의 물건과 시스템을 그렇게 불편하다고 느꼈고 새로운 것을 가지고 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있었을까? 그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 나의 현재를 남들이 가진 것, 상상된 미래의 것들과 비교하는 일에서 말이다.


어차피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는 없고 방향만 있을 뿐이다. - 그 방향이란 것도 옳은지는 모르겠다. 수학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간다고 우리가 느끼기 때문에 존재하는것이 '방향'이다. - 그렇다면 그리 급하게 가속을 밟으며 살아야 할 필요가 뭐가 있나? 


디자인은 사람들이 작은 기쁨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최선이 아닌 최적의 디자인으로 시간을 끌고 지구생체사이클을 느리게 해서 현재를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현재의 불편이 알고 보면 엄청난 진보결과로 만들어진 '매우 편안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도 수십 년간 시장의 가스라이팅에 지배당한 욕망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기 때문에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최선을 다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작가의 이전글 서양인에게는 이야기로 전달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