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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l 06. 2024

왜, 유럽식당 메뉴판에는 음식 사진이 없나?

세상 모든 가설


외국에 여행을 가서 식당에 가면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라틴어 배경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일단, 평소에 쓸 일 없는 영어, 이태리어로 된 재료의 이름을 알 수도 없기도 하지만, 안다고 한 들 그 재료의 조합이 어떤 맛을 낼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래서 영어로 이름을 알고 있는 재료가 한 두 개라도 들어있는 요리로 한정된 주문 하다 보니, 정말 그 식당에서 잘 만드는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페인까지 가서 맥도널드를 먹으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맥도널드에는 커다랗게 햄버거의 이미지가 있으니까.


아시아국가들에서는 많은 도시의 식당들에서 메뉴판에 요리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식당 문, 간판에 요리 이미지를 보여주고 주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렇다면, 서양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글로 된 메뉴판을 고집하고 있나?  




먼저, 한국과 아시아 국가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먼저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


우리에게 음식은 단지 입맛을 위한 게 아니다. 요리사가 생각하기에 최선인 하나의 완성된 요리이자 보약이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입맛에 맛게 골라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식당에서 제공하는 요리의 재료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식당주인이자 요리사이신 아줌마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한국 식당 메뉴판에는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일일이 나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뭐가 내 입맛에 맛고 안 맞고가 아닌 요리 전체의 구성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뭐, 명태 러시아산, 김치 국내산,  호주산 소고기 같이 원산지를 속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하는 원산지 표시하기 위해 재료를 표시하기는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세상을 바라볼 때, 각 개체들을 따로 보기보다, 전체적으로 이루고 있는 모습, 그 개체들과의 관계, 그리고 당장의 모습이 아닌, 그 개체들이 이후에 우리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까지 시, 공간을 통틀어 전체적인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파악한다. 그래서 요리에서도  완성된 전체가 중요하고 그 전체를 단번에 보여주는 요리의 사진으로 메뉴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세상을 바라볼 때, 개체들끼리의 관계나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각 개체들을 분리해서 따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나서 한참 후에나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효능 등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당장의 시각적, 미각적 즐거움이 우선이다.


서양인들은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요리사의 경험을 통해 결정되어 주어지는 음식보다 자신의 손, 눈, 입으로 그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생긴 선호를 바탕으로 음식의 최종 구성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떤 요리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것을 선택적으로 포함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재료들 간의 관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요리의 사진을 보고 맛을 상상하는 일은 나열된 각 재료를 순차적으로 읽어서 경험을 상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음식이 어떤 재료인지, 스스로 파악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맛으로서 당장 경험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양에서 음식은 당장의 입맛 보다 사람에게 좋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이미 만들어져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개인이 각자가 원하는 대로 바꾸게 되면, 요리사의 선의를 무시하는 것이고 최고의 음식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정리하면, 우리가 유럽식당에서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그들이 완성된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이 아니라, 손님에게 최종적인 맛을 선택하도록 하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양인이 한국식당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최종적인 맛의 옵션을 선택할 수 없고 어떤 재료가 섞여 있는지 몰라 싫어하는 것을 먹게 될 것의 두려움 때문이다.


외국인 손님을 많이 받는 한국 음식점의 경우 서양인의 그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요리 사진뿐 아니라 재료를 나열해 주는 방식도 요즘 많이 사용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 동양인의 그런 점을 고려해 사진을 넣어주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동시에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좀 글로벌 한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하는 트렌드 덕분에 용감하게 아시아의 음식을 시도하는 서양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알고 나면, 유럽여행에서 우리가 겪는 그런 불편함을 그냥 불평으로 끝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적응하기도 쉽지 않을까? 더구나 요즘엔 음식이름으로 요리의 비주얼을 검색하기가 쉬워서 예전같이 주문에 정말실패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와 동시에 서양인들도  한국 식당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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