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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n 29. 2023

추상화

디자인 에세이


고전주의에서 인상주의 화풍으로 넘어올 때 관람객들은 사람들은 반대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 새로운 화풍을 가지고 나온 화가들의 실력을 평가절하하며 비난했다. 추상화풍이 나왔을 때도 마찬 가지였다. 아이들 장난 같은 그림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되지 않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피카소는 한 장면에 대상을 소화된 이미지를 움직이는 시간 안에서 포착하였다. 기존 작가들이 자신의 프레임을 한 점의 시선, 한순간의 시각, 입력된 표층의 이미지를 담는 것으로 가져갔다면 추상화가는 시간차원을 통해 받아들인 다양한 시선을 뇌 속에 기억된 심층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작가들은 내면세계의 연구자들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동일한 장면을 그려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장면도 자신이 바라보고 느끼는 독특한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장면의 해석은 일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서양의 물질주의 합리주의 관점에서 전통적 한국화를 보면 허점 투성이로 보일 것이다. 산과 산사이는 복잡해서 생략한 듯 공백이요 사람들과 말들이 누워있고 건물의 좌우가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이 더 크고 남쪽의 산들은 뒤집어져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선조들은 이미 사물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법을 알았고 의미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고정된 시공간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그래서 동일한 사물도 여러 시점과 시간에서 바라보고 느낀 것이 중첩되어 기억된다. 한국화는 이런 철학이 들어있다. 난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지고 인상주의와 입체파를 논할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해오던 화풍에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아이들의 그림을 좋아한다. 굉장한 추상화이다.  Abstractisation이라는 능력은 아주 어릴 때 아기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이다.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관념이 생기고 연필을 다루는 기술이 생기면서 이런 추상성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복제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는데, 대부분은 여기서 좌절을 맛보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다행히 현실복제의 기술을 정복한 몇몇 이들 중 겨우 한 두 명만이 다시 추상화의 길로 돌아간다.  그들의 그림은 다시 아기 그림처럼 바뀐다. 잊어버렸던 능력을 되찾는다. 그런데, 우리는 화가의 사실화 능력을 마치 화가 면허증 또는 학력증명으로 본다. 작가의 중기의 작품을 보고 일단 실력을 판단하고 그런 다음 후기의 그림에서 화풍을 논한다. 


만일 어떤 이가 2살 때의 그림화풍으로 60세까지 지속해서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아이가 관념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 2살, 3살 때 정도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 아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는 그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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