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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l 03. 2023

왜 중국집 짜장면은 항상 '이제 출발해요'라고 할까?

세상 모든 가설

중국집 짜장면 배달의 생명은 속도다.

가끔 배달시키지 않고 동네 중국집에 가서 주문을 해보면 안다. 

내가 주문한 것 10분 넘어도 안 나오는데, 배달은 1분에 한 그릇씩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 그렇다고 집에서 주문하면 1분 안에 오는 것도 아니다. 20분이 되어가면 슬슬 짜증이 나면서 확인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배달의 생명은 신속 정확이기 때문이다. 옆집으로 배달이 잘 못가도 안되고, 20분 이상 걸려서도 안된다. 그러면 불어 터지기도 하겠지만, 주문할 때 머릿속으로 짜장면을 그리면서 미리 장만해 뒀던 위장 속의 짜장면 공간이 다시 사라지기면 그만큼 맛있게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확인 전화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나도 안다 그렇게 전화한다고 내 전화 때문에 내 짜장면이 빨리 배달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중국집 사장님도 이게 주문전화인지 재촉전화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 전화를 받긴 하지만 아마도 목소리의 톤만으로도 어떤 응대 매뉴얼을 따라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것이다. 

이때 매뉴얼에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네네, 이제 나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나가고 있다는 말인가?

주방에서 홀로 나가고 있는 건지, 홀에서 배달용 오토바이 쪽으로 나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경험에 따르면, 그 나가는 과정의 범위는 굉장히 넓은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집 사장님의 머릿속에서 짜장면 주문을 받고, 주방에 주문을 넣고, 주방에서 짜장면이 나오고, 나온 짜장면이 배달부의 철가방에 들어가는 전 과정은 하나의 '나간다는' 하나의 시간 단위에 포함된다.

물론, 주방에서 이루어지는 그 많은 과정은 단 하나의 단위 '조리'로 함축되어 있고 그나마 보이지 않으니 짜장면이 나가는 과정의 추상화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떤 경우 '지금 나간다'는 답을 받고 5분도 안 돼서 배달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같은 답을 받고도 30분 가까이 기다린 적도 있다. 


따라서 중국집에서의 시간은 아주 큰 단위로 묶여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큰 단위로 시간을 묶는 방식은 한국 사람에게 매우 익숙하다.

가까운 미래는 마치 현재의 시간에 포함된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 그 사건, 그 시각뿐 아니라, 그 사건의 앞 뒤의 관계와 시간을 함께 떠올리며 어떤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떤 회사가 직원을 뽑을 때, 그 사람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과거에 했던 일들, 그리고 미래의 역량 발전 가능성까지 함께 판단을 한다. 다시 말해, 근과거, 현재, 근미래의 그 지원자를 함께 인터뷰하고 뽑는 것이다. 


다시 짜장면 얘기로 돌아가서,  중국집 사장님에게는 아직 주방에서 조리 중인 내 짜장면은 짜장면이 배 달나 가는 과정의 일부분에 있기 때문에,  근미래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독일인이 중국집 사장님이었다면, 짜장면이 어떤 조리과정에 있고, 주방에서 나오는 예상시간을 알려줬을 거다. 물론, 배달 시간은 교통상황에 따라 다르니 최대 40분쯤이라고 정확히 얘기해 줬을 것이 분명하다.


늘 경쟁하고, 먹고살기 바쁜 한국 사람들은 확실히 현실적이지만, 모두들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현재의 모습과 함께 그리며 살아가는 그래도 이상주의자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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