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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l 23. 2023

네스프레소

디자인 에세이


한 15년 전쯤인가 한참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이 나왔을 때, 그 편리함에 쏙 빠졌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자동식 커피머신을 사용해 왔었다. 그 큰 기계는 커피 원두와 물을 넣으면 원두를 갈아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덩치가 크기도 하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입맛에 맞는 원두를 사려고 원두를 볶아서 파는 원두가게를 찾아다녀야 했고, 그렇게 번거롭게 찾아간 만큼 한 번에 필요이상의 커피를 오게 되어 한동안 그 한 가지 맛을 줄기차게 뽑아 마셔야 했다.  무엇보다 수고스러운 것은  커피찌꺼기를 주기적으로 비워줘야 하고 청소도 해줘야 하는 거다. 완전 자동이라고 해놓고는 오히려 내가 커피기계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드디어 깔끔하게 알루미늄 커피캡슐을 사용하는 네스프레소를 장만했는데, 캡슐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이건 신세계였다. 깔끔하고, 간소하고, 맛있었다.


내가 경험디자이너이다 보니 '도대체 이 네스프레소라는 놈은 어떻게 디자인이 되었길래 뜬금없는 새로운 사업방식으로 성공을 할 수 있다 말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답은 네스프레소를 사용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비즈니스적인 관점과 경험적인 관점에서 여기에 다시 적어본다.


비즈니스적인 관점은 당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이 나오면서 시작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애플은 중국에서 만든 폰에 자신의 서비스를 심는다. 폰을 팔아서 버는 돈도 있지만 사실은 앱이나 음악을 파는 서비스에서 돈을 버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시작했는데, 네스프레소는 커피계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네스프레소는 커피기계를 파는 회사도  커피를 파는 회사도 아니다. 이 회사는 캡슐커피 시스템을 파는 플랫폼이고 그 위에 기계와 커피가 올라 탈뿐이다. 그래서 네스프레소 시스템 안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기계들이 있다. 그리고 캡슐 시스템 안에는 다양한 커피들이 들어올 수 있다.


이런 플랫폼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다른 많은 브랜드에서 이미 팔고 있는 커피기계나 커피가 있어서가 아니라 독특한 경험이 먼저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맞다 네스프레소는 경험을 팔려고 한 것이지 기계나 커피를 팔려고 한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며 그것을 제공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사업구조로 플랫폼을 택한 것이다. 이 분야는 내 전공도 아니니 간단히 넘어가자.


자 그럼 그 경험관점에서 보면 어떤 새로움이 있을까? 그것은 실제 유럽의 어느 거리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경험을 떠 올려보면 된다. 이태리는 아니었지만 독일에 업무차 2주간 출장을 간 적이 있고 나는 사무실 앞의 작은 카페에 매일 들렀다. 오늘도 그 작은 커피가게에 잠깐 발들 들여놓는다. 매일 오는 가게이고 카페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며 그 카페주인은 나를 알기 때문에 내가 주문하기도 전에 카페주인은 나에게 눈을 맞추고 턱을 살짝 내밀어 '오늘도 그거?'라는 표정으로 바로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시작한다. 거친 그라인더 소리, 기계에 압력이 올라가는 소리, 그리고 작은 한잔의 에스프레소. 짧은 순간에 오감을 자극하는 진동, 소리, 향기를 경험할 수 있다. 난 거기에 설탕 두 스틱을 넣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쓴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늘도 골치 아픈 회의들에 앞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으니..


네스프레소는 이렇게 바쁜 하루를 사는 '오피스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경험을 짧은 시간에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없앴다. 무엇보다 그게 중요하다. 좋은 원두를 찾아다니고, 봉투를 열어서 기계에 채우고, 봉투에서 향이 나가지 않게 꼼꼼히 닫아주고, 커피찌꺼기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찌꺼기 통을 청소하고, 주기적으로 물받이를 비우고, 기계내부를 청소하고 하는 일련의 모든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 경험을 없애버렸다. 일단 커피 한 봉지를 시작하면 줄기차게 그 한 가지 향의 커피를 마셔야 하는 'commitment'도 필요 없다. ('Commitment'가 없는 경험은 또 다른 디자인의 주제인데 다음기회에 써보고자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라면 디자인 과정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 문제해결법이다. 보통 'Design Thinking'이라고 부르는 -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 방법론으로 충분히 상상해 낼 수 있는 경험디자인이고 거기에 사업적 전략으로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플랫폼 사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사업에코시스템을 키우는 것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며 협력적인 접근이 가능한 기업이라면 '그냥' 가능한 아이디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디자이너의 전략을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상상이긴 하지만 비즈니스전략을 성공시켰던 비밀은 사실 아래에서 설명할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던 인사이트가 유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경험'이란 것은 상당 부분 사람이 인식하고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며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도 할 수 있다. - 만화 '식객'에서 보면 미식가들이 요리의 맛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네스프레소의 디자이너는 그 '경험'에 더해서 '본능'을 설계했다. 본능은 우리가 일관성 있게 하는 행동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그것을 함으로써 만족 (욕망충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화 심리학적인 디자인을 했다는 뜻이다.


사람과 같은 고등생물이 생존과 번식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적능력을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며 그래서 집단내에서 권력과 자원을 다른 개체들보다 더욱 많이 차지해야 한다. 그러한 지적능력과 사회적 권력은 논리적으로 연결된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Hard wiring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먼저 오던 상관이 없이 보상이 주어지게 되어있고 그 보상으로 그 관계를 또 강화시킨다. 그 '보상'이 우리가 얘기하는 욕망충족의 만족감이며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강화로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본능을 따른다'라고 표현한다.



네스프레소는 사람이 원시시대 나무 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본능을 따르게 디자인되어 있다. 유인원은 오늘날 오랑우탄, 원숭이류처럼 사회적 집단이었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사회적 체계아래 권력의 계단이 있으며 그 계단을 오르는 데는 힘과 지적능력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유인원들의 머리가 좋아진 데는 손가락을 쓰고 그래서 과일의 껍질을 벗기는 근육운동을 통한 정보처리 능력이 향상된 것도 있지만 잘 익은 열매의 미묘한 색깔차이와 향기, 당도에 따른 껍질의 질감을 구분하면서 발달된 지적 정보처리 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인공지능 시스템에서도 GPU의 역할이 매우 크다.- 사실 과일을 먹기 시작한 것이 먼저인지 손가락이 발달한 것이 먼저인지 또는 잘 익은 과일의 색을 구분하게 된 게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행동은 지적능력을 반영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자원을 남들보다 더 확보할 수 있게 해서 사회체계의 상위에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잘 익은 체리, 딸기, 도토리, 대추 등 과일을 손으로 만지고 고르고 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해내며 그러한 동작을 하는 사이 미묘한 만족감을 얻는데, 시장에 가서 사과선반에서 잘 익은 사과를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고 손으로 살짝씩 만져보고 들어보고 하며 빠르게 좋은 과일을 바구니에 담는 행동이 그것의 하나이다, 시각, 후각, 미각은 동시에 작용하는데, 열매의 색상과 탄성, 향기를 빠르게 구분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 우리는 일종의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네스프레소의 캡슐시스템은 정확히 이 부분을 - 원시시대의 행동-을 재현해 놓았다.


먼저 부티크라는 캡슐스토어는 고급패션 부티크의 콘셉트로 손님이 직접 옷을 뒤적이고 찾아내는 게 아니라 깔끔하게 정리된 선반에 색상으로 향기를 예측할 수 있는 캡슐들이 색상 스팩트럼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 캡슐팩들은 표준화되어 있어 굳이 손으로 들어보고 개수를 세어보거나 하는 부가적이고 물리적인 경험은 없지만 색상구분이라는 단순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지적 능력을 '맛있게' 사용하게 해 준다. 투입하는  수고대비 얻어지는 감각적 이득이 매우 크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커피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저장하고 커피를 소비하기까지의 경험 중 핵심 부분- 소리, 향기, 맛 - 만을 소비하도록 하는데 투입대는 다른 물리적 수고를 최소로 줄여놓았다.


다음으로는 캡슐자체의 디자인이다. 다른 캡슐제품과 다른 이 알루미늄 캡슐은 마치 알맞게 익은 열매와 같은 광택을 가지고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 투명접시에 담아 놓으면 마치 체리를 담아 놓은 것 같다. 거기에 여러 가지 맛(색)을 섞어서 담아 놓으면 자연 상태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익고 있는 열매를 모아 담아 놓은 듯하며  그중 맛있어 보이는 놈을 골라내는 본능적 행동을 유도한다. 동일한 색(맛) 캡슐이 담긴 접시에서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한 두 가지 색이 뒤섞인 접시에서 내가 좋아하는 맛을 골랐을 때의 느낌이 훨씬 좋다.



작은 노력으로 그보다 큰 보상을 얻는 연결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건 풍선효과인데 다음번에 얘기해 보겠다.) 같은 맛 -색-으로만 된 것에서 하나를 골라낼 때에는 '선택'이라는 최소한의 지적 노력이 없이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보상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반면 이렇게 단순하지만 지적 수고를 요구하는 행동 이후에 맛있는 음식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때는 행동과 보상사이에 강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수고 없는 보상이나 일정한 보상보다 작은 수고라도 들이고 그것보다 조금 큰 반응을 조금씩 불규칙하게 받을 때 그런 행동을 매우 강하게 형성한다는 실험이 있다. 사람이 원시시대부터 가지고 있던 이 본능적 욕구를 네스프레소의 캡슐은 매 순간 진동, 소리, 향기, 맛이라는 감각적 보상과 한께 강하게 연결 고리가 만들고 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나? 비어있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캡슐팩이 비어 가고, 캡슐팩을 담아두었던 서랍이 비어 가고, 캡슐을 담아두었던 테이블 위의 투명접시가 비어 간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시각적으로 완성시키고 싶어 한다. 이빨 빠진 동그라미는 채우고 싶고 끊어진 선은 연결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채워졌을 때의 모습이 미적으로 더 유려하며 기능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느낀다. 이것을 '게슈탈트법칙'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시각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때 떨어져 있는 것들을 묶어서 하나의 형태로 인식하면 인지에너지가 적게 소비하기 때문에 생긴 생물학적 인지적 본능이다.


그래서 그 비어있는 캡슐 접시를 채우기 위해 서랍에 들어있던 캡슐을 상자에서 꺼내서 채우고 또 비워가는 그 서랍을 채우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시작한다. 이 행동을 '독려'하기 위해 네스프레소는 각종 캡슐디스펜서나 트레이를 액세서리로 팔고 있다. 트레이나 디스펜서가 비어 갈수록 그것을 채워서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비슷한 예로 애플와치의 활동그래프가 동그라미를 채우는 식으로 되어 있어 동기부여를 돕는 것이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나는 네스프레소 제품 디자이너가 진짜 이렇게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고, 우연일지라도 내가 이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세세하게 느꼈던 점들이 위에서 얘기한 진화심리학적 이론과 맞아떨어진다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벌써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상품에 잘 적용하고 그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는 사람의 본능을 잘 알고 있는 상품기획자와 디자이너덕에 돈을 수억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들이 게임 회사들과 콘텐츠 회사들이다.


캡슐서비스를 하는 다른 커피브랜들이 많지만 네스프레스가 프리미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은 본능을 가장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에 돈을 더 쓰기 때문이다. 본능을 이렇게 인위적으로 잘 만족시켜 주도록 디자인된 상품이 옳은 디자인인지는 다른 문제인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루어 보겠다. 아무튼 이러한 반복 경험이 지루해지는 시점이 있다. 그냥 색상, 빛, 소리와 같은 머리의 감각기관만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다시 손맛이 근지럽게 된다. 이 기계를 사용하면서 바쁜 일상은 느려졌다기보다 더 바빠졌다. 아마도 바쁜 가운데 짧은 휴식이 더 달콤한 것처럼 이것도 의도된 디자인인가라고 질문을 해본다.


이렇게 네스프레소가 지겨워질 때 즈음 내 몸은 더 이상 카페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체질이 바뀌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디카페인 커피 외에는 다른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아마 이때가 민방위에서 해제된 때였던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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