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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l 22. 2023

컵은 누가 치우나

그냥 사는 이야기


이제 그 불편하다는 것이 오히려 편해질 정도로 일상이 되어서 잘 못 느끼지만,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은 불편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편하게 생각하는 게 한 가지 있다. 카페나 푸드코트와 같이 직원보다 손님이 훨씬 많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나서 빈컵이나 쟁반을 퇴식구로 치우는 일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게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돈을 지불하고 공간을 사용하는 손님의 입장에서. 심지어 커피도 테이블까지 서빙해 주는 곳도 대부분이다. 맥도널드에서도 테이블로 햄버거를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있다. 한국처럼 손님이 서빙하고 손님이 직접 치워주는 문화가 당연한 게 아닌 것이다. 커피 한잔 만드는 비용대비 지불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그래야 마땅한 게 아닌가?


반면에, 다음 사람이 빨리 자리에 앉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사용한 컵이나 그릇을 치워주는 것이 작은 노력으로 전체적으로는 보다 큰 이득을 얻는 것이 사실 이기도하다. 내가 자리에 앉고 싶을 때 앞사람이 남긴 커피 컵이나 식사쟁반을 직원이 치워주기까지 기다리는 것 보다야 효율적인 방식인 게 맞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시간적 영역을 더 넓게 예측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현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커피 마시기 전과 이후의 순간까지 폭넓게 보고 가장 최적의 조건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의 준비를 다음 순간에 가서 하려고 하면 그 행동이 분산되기 때문에 미묘하나마 비효률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더 소비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주차할 때 정면 주차를 해놓으면 나중에 차를 뺄 때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미리 주차할 때 후면 주차를 해놓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뉴질랜드 사람들은 이런 간단한 집단행동을 하지 않을까?

몇 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투자하는 것에 가치를 적게 둔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현재의 것에 더 가치를 두 기 때문에 현재의 수고에 따른 미래의 더 큰 편익은 상대적으로 무의미 해진다.

- 남들의 경험이나 행동결과를 따르거나 믿기보다 자기 행동결과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믿는 서양인의 습성 때문에 나의 행동이 전체적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직접 경험할 수 없고 그래서 순간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 

- 남은 컵을 치우는 직원의 일자리는 잠재적으로 나의 미래 일자리가 될 수 있으니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일거리를 남겨 놓는다. ( 미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자신의 미래 일자리를 위해 현재의 편안함을 손해 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가능성이 낮은 가설이다.)


'우리'는 항상 내가 속한 집단이나 프로세스의 전체적 효율성을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버스가 조금이라도 정차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일어나 문 앞에 서 있어야 하고, 식당에서 줄이 길면 미리 메뉴를 선택해서 주문해 놓고, 메뉴통일은 물론 2인분 이상이라야 주문할 수 있는 메뉴도 많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에서 한쪽으로 서서 빨리 가는 사람의 길을 막지 말라고도 교육받은 적이 있다.


가만히 보면 그런 교육과 문화들은 아마도 베이비 부머와 직후 세대의 비애가 아닐까? 사람이 많다 보니 모두가 그런 서비스를 조금씩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늘 양보해야 했고 '형평성'이 중요한 나라이다 보니 모두 다 비슷한 서비스를 누려야 했다. 집단이 갑이 되고 개인이 을이 되는 벗어날 수 없는 갑을의 세계에 살았던 거다. 그래서 한쪽에서 을의 역할을 할 동안 쌓인 욕구가 다른 쪽에서 갑이 되는 순간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챙기려고 했었다. 한마디로 피곤하게 살았던 거다. 


뉴질랜드도 갑을이 없는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적다. 일상생활에서는 을이 갑에게 의무적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Hostpitality'를 제공한다. 서로 돕는 거다. 그러니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도움이 당연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난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찬양하지는 않는다. 다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아주 편하다. 작고 허름한 데다가  깨끗하거나 최신 유행의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갑 을이 없는, 누군가를 을로 대할 필요 없는 그래서 '관계'가 아닌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불편함의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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