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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Jul 28. 2023

하향식, 상향식

세상 모든 가설


어느 날 아이의 수학 시험지를 보게 되었다. 

내가 학교 때 보던 수학문제와는 살짝 다른 방식의 질문이었다. 

'라때'는 수학문제는 어느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는 보편적인 공식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였다. 


예를 들어 문제에는 실제적인 상황이 들어 있지 않고 오로지 숫자와 기호만 들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껏해야 검은 주머니에 빨간 구슬과 파란 구슬 몇 개 들었다는 세상에 쓸 때 없는 예시를 들며.


반면 뉴질랜드에 사는 우리 아들의 시험지에는 어떤 실제와 유사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수학으로 풀어내는 것이 테스트였다. 아마도 한국의 시험도 지금쯤 어느 정도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서 문득 다시 한번 동, 서양의 철학이 비교되어 보였다. 동양이라기보다 한국적인 철학이 아닐까 한다. 

우리 때는 위에서 내려주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무의식 중에 했었다. 아마도 지금도 어느 정도 동일 할 것으로 본다. 


우리의 방식은 굉장히 효율적이다. 이미 조상들이 실생활에서 터득한 지혜를 뭣하러 내가 다시 검증하는데 시간을 써야 할 것이며, 검증을 한들 수 세대, 수십 세대의 조상들이 투입한 시간만큼을 내가 투자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그냥 받아서 쓰면 되고 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혜를 얻어서 후세에 물려주면 된다.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양문화는 다르다. 경험주의 철학이 기반되어서 그런지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터득한 것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거나 진실이 아닌 지혜가 된다. 당연히 부모나, 친구가 전달해 주는 지혜에  별 가치를 두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경험하여 실험을 해본 후에 깨닫는다. 이 얼마나 비효율 적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노인이나 부보, 교사와 같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과 배움의 장소에 대한 존경하는 경향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낮다. 요즘 한국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교육은, 수학을 비롯하여, 이미 보편하된 원리, 지혜를 전달해 주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그렇게 많은 문제를 외어서 풀어야 하며, 교과서에 쓰여있는 것과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평생사용할 지식과 지혜를 내려주는 부모, 교사, 전문가를 존경하고 그분들이 얘기할 때는 조용히 있는 문화가 되어 있다. 심지어 내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그분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가르쳐줄 의무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곳의 서양의 교육에서는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없다. 교재를 사용하긴 하는데 그냥 교사가 사용하는 보조자료라고 보면 된다. 우리처럼 그 수많은 어렵고 다양한 문제를 풀어 재끼며 궁극의 원리에 도달하려 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당면한 문제의 풀이과정을 본다. 답보다 문제 풀기 과정이다. 그리고 숙제는 어디서 어디까지 읽기나 문제 몇 개 풀기가 아니고 프로젝트로 새로운 사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세우거나 문제의 해법을 찾아 발표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미리 준비하여 가르치는 내용은 상대적으로 적다. 새로운 지식은 모르는 학생이 물어서 찾아내야 한다. 내용은 학생들에게서 나오고 교사들은 방법을 코칭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학생들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려고 안달이다. 우리의 학교와는 다른 모습이다.


어느 것이 더 좋은 방식인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우리의 전달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다. 오랜 경험이라는 빅데이터에서 나오는 인사이트는 마치 알파고가 직관과 인사이트를 사용하는 것과 같고 매번 수학 계산공식으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에 있어 훨씬 '효율적'이다.  '효율적' 이긴 한데, '창조적'인지는 모르겠다. '창조적'인 것은 기존의 것들을 내 경험을 통해 새롭게 증명할 바에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 되기 때문에 더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한다.


서양의 방식은 밀림에서 순간순간 알 수 없게 전개되는 날씨와 맹수들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데 새로운 정보와 기술의 정글 속에 사는 현대에 매우 맞는 방식일 수도 있다.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기존의 것도 새롭게 해석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상황에 꼭 맞는 맞춤형 설루션을 찾아내는데 좋을 수도 있다. 이들은 비효율 안에서 창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재즈피아니스트 키스 제럿이 조율이 완벽하지 않은 피아노를 사용해야 하는 예상치 못했던 라이브에서의 연주가 명반으로 남은 것처럼.



그래서 한국인은 동일한 사고와 행동체계를 가지고 있는 '단일화된 문화를 유지하는' 경향을 가지는 대신 그것을 다시 검증하지 않음으로써 절약한 에너지와 시간으로 새로운 것을 실험하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게 진보한다. 말로 하지 않고도 눈빛만으로, 어조 만으로 심지어 그냥 분위기 만으로도 서로 무슨 뜻인지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할 때 제스처나 얼굴 표정이 서양인해 비해 아주 적은 편이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정보와 지식, 사상이 많기 때문에 빠르게 의사소통하고 다음 아이디어로 넘어갈 수 있다. 여기서 빠르다는 것이지 다양성이란 것과는 다르다.


서양은 에너지와 시간을 남들이 이미 한 것을 직접 해보느라 낭비하는 듯하지만 남들이 한 것을 다르게 체험하면서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한 방향이 아니라 느리지만 다양성이 많아진다. 다양함은 서로 다른 지식과 사상을 가지게 만들고 뭔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서양 인들은 대화할 때 과장된 동작과 표정을 수반해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동양인이 말수가 적으면 대화 주제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거나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많은 것의 장점은 그중 한 가지가 나머지 실패들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독특하고 진보적인 것일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둘을 잘 섞어 균형을 맞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적 하향식 사고방식과 서양의 상향식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히 아이들이야 말로 이런 균형을 가장 잘 맞추고 있는 세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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