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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Aug 04. 2023

창의성에 대한 믿고 싶지 않은 비밀

디자인 에세이


한국에서 어떤 한 한국인이 주도한 세계적인 산업디자인이란 것이 나오기 힘든 구조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다.


가끔 유명 외국 디자이너를 영입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이끌어 신형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기사를 가끔 접한다. 물론 검증된 디자이너를 비싼 연봉으로 데려왔으니 실패할 것도 성공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사명이 있긴 하다.


먼저 자동차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단히 보고, 왜 용병으로 데려온 디자이너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지 보겠다.


자동차의 기계적인 부분은 거의 표준화되어 있다. 자동차의 길이, 폭, 높이, 비례를 결정하는 소위 말하는 소형, 중형, 대형, 세단, SUV, 사용과 같이 큰 구조적인 스펙들도 거의 정해져 있다. 디자이너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은 각 차종에 대해 사람의 눈에 보이는 부분을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마케팅관점에서 고객 세그먼트라는 것이 있다. 어떤 차종의 이전 버전에서 회사가 추구한 디자인적 컨셉트를 이어가면서도 해당 차종의 타깃 세그먼트의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스타일을 최신 트렌드에 맞게 업그레이드시켜서 새로운 형상으로 만드는 일을 디자이너들이 하게 된다. 당연히 그 보다 상위의 디자인 활동인 브랜드(개별 차종의 컨셉트가 아닌 '아우디' , '지프', 'BMW', '기아' 같은 상위의 브랜드 컨셉트)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지는 그 브랜드의 모든 디자인 팀이 지속적으로 가지고 가는 과제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브랜드', '차종콘셉트', '새로운 형상'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차종의 몇 연식을 디자인하던 동일한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일관성'이 필요하고 동시에 이전과 달리 진화했다고 느낄 수 있는 '혁신'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디자이너들에게 주어진 주된 임무이다. 물론 그런 혁신 사이에는 판매전략 차원에서 다양한 사양과 중간 버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은 혁신 'Model year' 같은 부분 변경을 위한 디자인도 해줘야 한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여러 팀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팀은 서로 다른 차종을 나누어서 맡아서 진행하지만 주요한 모델은 경쟁체제로 디자인하기 위해 여러 팀이 동시에 디자인하되 다른 팀이 어떤 디자인을 진행하는지 모르게 한다. 품평날(경쟁프레젠테이션)이 되어서야 상태팀에서 어떤 디자인을 가지고 나오는지 알게 된다.


두 팀에 주어지는 상위 컨셉트(브랜드나 차종 컨셉트)가 다르다면 아마도 완전히 다른 두 디자인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위컨셉트(구체적인 조형적 컨셉트)는 서로 다르게 가면서 '새로운 형상'을 실험하는 동안 브랜드이미지는 두 팀을 아우르는 누군가가 유지하면서 서서히 진화시켜야 한다.  여기에 디자인 연구소장이나 부사장 레벨의 디자이너가 역할이 있다.


개개인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감각적 기술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각자가 서로 다른 차종을 알아서 디자인한다면 디자인에 너무 많은 변이가 일어나 브랜드가 멸종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총대를 메고 한 가지 이미지를 이끌어야 해야 하는데 매니저급 디자이너 중 그 회사 브랜드에 가장 부합하는 스타일의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그 자리를 맡게 된다. - 참고로,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있고 그것을 한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 물론 어느 정도 민주적인 방식의 디자인이 하위레벨에서는 사용될 수 있지만 중, 상 레벨에서는 한 가지 방향의 디자인이 매우 중요해진다.


자동차 디자이너 조직이 피라미드식 구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치 유명 카툰작가가 모든 그림을 자신이 다 그리지 않고 기본적인 스토리와 주요 캐릭터와 스타일을 정의하면 일종의 문하생들이 그 하위의 상세한 부분을 채우는 것과 같다. 아무리 뛰어나 실력의 작가가 많더라도 두 사람, 세 사람의 메인 작가가 있을 수 없는 거다. 왜냐하면. 어떤 독특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진화시키는 디자인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위험이 동시에 따른다. 그래서 컨셉트디자인을 개발할 때는 외국의 디자인 분소에서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디자이너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일인데 그게 왜 위험하냐고? 그리고 왜 위험한 건 외국인에게 맡기냐고?  스포츠게임에서 용병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자동차 기술은 평준화되었고 매우 경쟁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차종의 새로운 디자인을 출시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투자비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 차종을 생산하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그 차종을 판매하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기도 한데 만일 그 차종의 메리트가 떨어져 차가 팔리지 않고 생산라인이 문을 닫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디자인을 먼저 선택한다. 그다음이 편의성과 성능이다. 가능한 모든 기술을 넣을 수 있는 상위 차종일수록 디자인이 더욱 중요해지기도 하고 마진도 높다. 그러니 실패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면 그 디자이너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조립라인의 직원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면서도 더 적은 연봉을 받는 디자이너가 위험을 무릅쓰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어렵다.


국내 실정상 자동차 디자이너가 자동차 회사에서 쫓겨나면 사실 어디 갈 데도 없다. 요즘은 경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보직 없이도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직무트랙을 매니지먼트와 디자인전문가로 나누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팀장이 40대 전후 정도이고 하나의 차종을 리드한다가 실패하여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 평직원으로 지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게 한국 기업에서의 정서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그 일로 변변찮은 일만 맡다가 회사를 나가게 되면 다시 어디에 취직하기도 힘들다. 혹시 새로운 디자인이 매우 성공하더라도 형평성이 중요한 한국기업이 특정 그 디자이너에게 갑자기 차별화된 연봉의 자리를 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디자인의 방향을 새롭게 정의할 때는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데려온다. 특히 유럽에서 데려온 디자이너에게는 차별화된 연봉과 자리를 주는 것에 명분이 선다. 그리고 그 디자이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패하고 계약종료 후 쫓겨나도 자기 나라의 우수한 사회복지 덕에 당장 굶을 일도 없으며 보직을 가지고 있는 동안 받은 차별화된 연봉으로도 새로운 일없이 십수 년은 버틸 수 있다. 자국으로 실패하고 돌아가도 아시아에 있는 어느 작은 회사에서 창의적인 조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충분히 둘러댈 수 있으니 한국에서의 실패가 자신의 커리어에서 큰 오점으로 남지 않는다. 그러니,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컨셉트를 실험해 볼 수 있게 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먹고살 걱정 없는 집안에서 더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아티스트가 나올 확률이 높고 또 그런 집안이 창의적인 활동에 돈을 더 쓰기도 한다. 다빈치가문의 재정적 지원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의 그 멋진 작품들을 우리는 지금 볼 수 없었을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디자이너의 실력과 상관없이 디자이너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와 사회보장체제가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줄 기회를 상당히 컨트롤하고 있고 마치 그에 따른 결과가 그 디자이너의 실력인 것처럼 비치게 만드는 것이다. 창의적 디자인의 비밀스러운 힘은 한 디자이너가 새로움의 실패에 대해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얼마나 적으냐이고 그 리스크는 안타깝게도 사회복지와 디자이너의 경제력에 좌우된다.


디자이너가 내놓는 디자인을 보면 그의 환경(회사조직과 사회적 관계)을 알 수 있다. 특히 제품을 만드는 산업디자인은 기술과 생산프로세스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거기다가 자동차 디자인은 디자인 디렉터의 입김이 매우 세고 동시에 여러 사람이 함께 피라미드 구조가 되어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 간의 컨셉트의 이해와 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금방 디자인으로 표시가 난다.


요약하면 한국의 현재 자동차 디자인은 디자인 조직과 부서 간의 힘의 구조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들을 회사를 떠나 생존하기 힘든 형편없는 사회복지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회사 안에서 좋으나 싫으나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는 디자인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이렇게 서로 얽힌 여러 사람의 입김이 돌아가며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 구조와 누군가 한 사람이 튀는 것을 못 봐주는 형평성의 문화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유명한 디자이너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이렇게 환경 탓만 하니 유명한 디자이너가 못 됐지. 진정한 디자이너라면 환경 탓을 하면 안 된다고. 맞다 환경이 좋지 않아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다면 그는 분명 많은 다른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을 포기할 만큼 하나에 몰입(몰빵)하는 디자이너임에 분명하다.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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