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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상 Dec 11. 2019

안물안궁

에세이를 쓰자

작가로서 이제 겨우 소설 한두 편과 에세이 한 편을 쓴 주제에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겠느냐마는 편집자로서는 20년 차가 되었기에 주제넘게 한 마디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는 ‘투고’란 것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제넘게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해야 하지요. 1년 차 편집자이든, 20년 차 편집자든, 이 편집자란 사람의 턱을 넘어야 비로소 투고 원고는 책이 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편집자의 관점에서 제가 쓴 에세이 《결국 소스 맛》을 교재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안물안궁’입니다.


출판사로 투고된 원고를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대략 50%는 됩니다.


“암 3기 판정을 받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업도 실패했지만 모든 걸 극복했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무일푼으로 시작해 세 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전, 이십대에 남편을 잃고 (중략) 아이들은 지금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모두 훌륭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본받아야 할 부분이 분명 있지요. 그런데 왜 수많은 에세이 중에 ‘당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야 하지요? 당신이 도대체 누구신대요? 잔인한 말이지만, 아무리 훌륭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우리는(겉멋 든 편집자) 당신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매일 소주를 세 병씩 마셨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나온 소주맛을 다 구별할 줄 압니다. 소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사업으로 출장을 자주 갑니다. 그래서 정말 짐을 잘 싸거든요. 여행을 위한 짐 싸기 스킬을 이야기해볼게요.”

“전 아이들이 잠자기 전에 매일 동화책 세 권을 읽어줬어요. 그 동화책 이야기와 아들이 명문대 간 내용을 연결할 거예요.”


이런 이야기에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보통 책은 주제가 우선이라 생각하지만, 편집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소재’입니다. 독특한 소재를 찾으세요.


제 책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도전’, ‘공동체’, ‘여유’, ‘적응’ 등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으면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남들이 들어줄까요? 


“네가 뭔데?”

“안물안궁.”

결국 소스 맛 표지

이런 반응이 나왔겠죠. 그래서 제 책은 “아들 밥상 차리다 보니 음식 맛은 소스가 좌우한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대단한 주제 의식은 안 보입니다. ‘소스’. ‘아침밥’ 같은 소재만 눈에 띌 뿐이죠. 

케첩? 굴소스? 두반장? 집에 하나 정도는 있는 소스 이야기니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한 분들도 있겠죠?


자, 에세이를 써서 ‘출판’까지 가고 싶다면, 먼저 독특한 소재를 찾으세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다면, 인생 중에 독특한 소재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그걸 찾아보세요.


거기에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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