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인간

유실: 부주의로 잃어버림

by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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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왕십리역에는 유실물 센터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온다.

여자가 들어오자 구석에 누워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아는 체를 한다.

“요즘은 여기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여자는 엉거주춤 서서 인사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안녕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서 있지 말고 거기 앉게.”

여자는 수염난 남자의 권유에 자리에 앉았다.

“여기는… 어디죠? 역무원이 여기로 들어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여자는 물었다.

“역무원이 여기로 가라고 하면 여기가 맞겠지. 역무원들은 정확하거든. 들어올 때 간판은 봤어?”

“유실물 센터라고 써 있던데요.”

“맞아, 여기는 유실물 센터야. 아, 내가 나이가 좀 많아서 말을 놨는데 불편한가?”

여자는 남자를 자세히 봤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존대를 하면 오히려 기분이 나쁠 듯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무렇게나 불러, 곧 헤어질 사이인데 뭐.”

여자는 영문을 몰랐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실물 센터에 와 있는 거죠?”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차피 알아야 하고 곧 알게 될 테니 말해주리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말을 이었다.

“유실물 센터 옆 작은 문은 유실인간 센터라고 하네. ‘유실’이란 ‘부주의로 잃어버림’이라는 뜻이지. 그래서 누군가의 부모가 그곳에 주로 들어가지. 간혹 친구도 있고. 내 삶이 바쁘다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을 부주의로 잃어버렸을 때, 그 사람이 유실되는 것이네.”

여자는 무언가 알 듯하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럼 저도 누군가 유실했다는 뜻인가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앞의 말을 이었다.

“유실은 부주의해서 잃어버리는 것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찾으러 오는 일이 많다네. 그동안 자신의 무심했음을 후회하며 말이지.”

“그러면 저도 기다리면 곧 누군가가 찾으러 오겠군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쓸쓸한 눈이 되어 말했다.

“끝까지 들어보게. 유실인간 센터 옆에 또 다른 문이 하나 있다네. 아주 작은 문이지. 그곳이 여기라네.”

“그러면 여기는 어디인가요?”

“여기는 유기인간 센터라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주로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부인이 주로 오네. 유실과 유기는 전혀 다른 의미지. 유실은 부주의로 잃어버림이지만 유기는 ‘내다 버림’이네. 누군가 마음속에서 우리를 내다 버린 거야.”

여자는 남자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는 과거의 일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아, 그래서 그랬나?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인가?’

갑자기 모든 일이 생각나고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 여기에 오면 다 그렇지. 과거가 생각나고 후회가 되고……. 왜 꼭 마음속에서 유기되고 나서야 그게 떠오르는지…….”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 방법이 없나요? 유기인간은 여기서 나갈 수 없나요?”

“극히 일부는 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뭘 알겠나? 나도 유기인간인 걸. 나에게 이걸 알려준 사람이 그냥 여기서 사라진 걸 보면 나도 곧 사라지겠지. 어디로 가느냐고? 몰라. 그런 건 유기되기 전에 신경 썼어야지…….”

후회가 가득한 남자의 얼굴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여자는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찾아오지 않을 걸 알았다.

그의 마음에서 유기되었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았음에도 애써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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